만성적자의 국영회사 대한항공공사를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인수하여 첫 출발했던 1969년 3월1일 같은 날에 필자는 언론사 프랑스 특파원으로 발령받고 파리로 떠났다. 유럽행 직항노선이 없어 도쿄에서 홍콩-뉴델리-테헤란-베이루트를 경유하여 파리로 갔던 기억이 난다. 그후 대한항공의 CEO가 된 정석(靜石) 조중훈(趙重勳, 1920~2002) 회장을 프랑스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인천에서 운수업을 시작했던 조회장은 선친(汗翁 愼兌範 박사)의 신외과가 지정병원이어서 필자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 때부터 알고 있었다며 파리에서의 만남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1972년 대한항공의 미국행 화물기가 첫 취항했을 때 서울에서 LA까지 보잉 707 조종사 휴게실에서 조회장과 함께 태평양을 횡단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후 대한항공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국제화에 기여하면서 육해공의 수송을 통합하는 종합운송그룹으로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사시로 삼았다. 파리에서 프랑스 기업가들과의 모임 때 『기업경영은 예술』이라고 하기에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기업경영이 어떻게 예술이냐고 물었더니 살벌한 경쟁을 예술처럼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창업자의 전문성과 의지와 노력으로 비상했던 대한항공이 2세를 거쳐 3세로 넘어오면서 사세와 이미지가 계속 추락하고 있다. 창업초기부터 세계적인 수송그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가깝게 지켜보면서 느꼈던 뿌듯함은 땅콩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물컵 갑질, 그리고 사모님의 행패에 이르러 실망상태였다가 회사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창업주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절망적이 되었다. ▶2014년 뉴욕공항에서 벌어진 땅콩회항 사건 후 대한항공 3세들의 탈선 행위와 경영주도권 대결을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 역시 실망적이다. 재벌가 자녀들의 일탈에 돌던지기와 자본시장에서의 대결이 흥미롭다해도 대한항공이라는 회사는 국기를 달고 세계를 누비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며 하루에도 수백편의 항공기가 수만명의 승객을 태우는 안전이 생명 같은 특수한 기업이기도 하다. 일탈과 탈선에 이어서 가족간의 대결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국가위신과 국민 생명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같은 상황에서 회사 조직내의 기강과 특히 안전분야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피고 국민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언론의 진정한 사명일 것이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