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목련꽃이 만개하고 벚꽃도 하나둘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매년 이즈음 전국에서는 새봄을 알리는 다채로운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지만, 올해는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예전과 사뭇 다른 봄을 맞고 있다. 이 분위기조차 낯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더더욱 그렇다.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일상적인 분위기가 한층 무겁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의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풍습도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오히려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나 해야 할까'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다소 생소한 생활 실천 목표는 우리들 일상에서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불필요한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상은 답답하고 무료해졌다. 가까운 사람들과 이따금 전화로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지만 이 또한 재미없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소득이 높아지고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 일상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긴긴 겨우내 집안에 갇혀 다른 할 일이 없어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고도 한다. 평소 바쁜 일과로 인해 나만의 여가 시간과 취미활동을 누리길 간절하게 원했던 때가 있었던 때를 상기해보자. 일상을 떠나서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여행, 너무도 바쁜 시간으로 읽기를 미뤄두었던 책을 꺼내 읽으며 좀 사람답게 살고 싶어 했던 그 시절. 지금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요즘은 온라인상에서도 개인의 취미활동을 돕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것도 찾아보면 제법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우울한 마음도 잊혀지리라 생각한다. 아는 것 보다는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에 더할 것은, 취미를 더 즐기려면 노력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취미로 만드는 것을 작품화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에너지가 들어가야 한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은 끊임없는 연습이다. 유명한 작가, 연주자와 같은 예술가들은 대부분 연습벌레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대중 가수들이 무대에서 멋지게 노래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 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70세가 넘어서도 전성기와 다름없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 송창식과 조용필, 그들은 가수 중에서 대단한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지금도 매일 일상의 많은 시간을 연습으로 보내는 송창식, 하루에 5시간 이상 매일 노래방에서 연습하는 조용필, 그들을 소개하는 수식어 - 가수의 왕, 신들린 연주자라는 칭송의 이면에는 피나는 연습이 숨어있다. 그들에게 연습은 훌륭한 스승인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도 인터뷰에서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알게 된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니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그저 생기는 게 아닌 것 같다.

평범한 우리들이 막상 주어진 여가 시간을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는 이유도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이 생업이고, 취미이며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동료이자 친구로 살아온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여가 시간을 즐기며 나만의 여유와 소박함을 담을 수 있는 취미가 없는 것이다. 아니면 너무나 단편적인 취미를 갖고 있어서 취미를 깊이 있게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는 생업 일선에서 은퇴한 많은 사람들이 생활 예술가를 꿈꾸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카메라를 든 사람,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 붓으로 펜으로 아름답게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 나만의 커피나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궁금해진다. 나만의 소중한 작품을 잉태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류가 바이러스를 이기고 정상적인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 그 작품이 전시되고, 공연되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는 멋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흥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