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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밀물] '미완의 책사'
[썰물밀물] '미완의 책사'
  • 정기환
  • 승인 2020.03.30 18:21
  • 수정 2020.03.31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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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한 캐이블채널의 중국 드라마 '사마의-미완의 책사'가 크게 히트했다. 여세를 몰아 속편 '사마의-최후의 승자'까지 나왔다. 중국 '삼국지' 시대, 제갈량의 인기에 가려졌던 위나라 사마의의 파란만장 일대기다. 나가서 싸우면 이기는 사마의에 조조는 의지하면서도 경계한다. "사마의는 결코 신하에 머물 사람이 아니다"라며 중용과 축출을 거듭한다. 여기까지가 '미완의 책사'다. 말년에는 위나라 황실 조(曺)씨 세력들에 위협을 느껴 스스로 은퇴한다. 2년간 다 죽어가는 늙은이 행세를 하다가도 쿠데타를 일으켜 위나라를 사마씨의 나라로 만든다. '최후의 승자' 얘기다.

▶드라마에서 사마의는 자신의 이기는 처세술을 설파한다. '사람이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참고 견뎌낸다.' 제갈량과의 마지막 결전에서도 참고 또 참는다. 제갈량의 기량을 아는지라 굳게 진을 편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제갈량은 병사들을 시켜 '겁쟁이 사마의'라 욕을 퍼붓게 한다. 마지막에는 사마의에게 붉은 치마를 선물로 보낸다. 그렇게 겁이 나면 차라리 치마를 입으라는 조롱이다. 과연 사마의는 붉은 치마를 걸쳐입고 제갈량이 보이는 곳에 나와 사례를 한다. 그 며칠 뒤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끝내 숨을 거둔다.

▶그 시절의 전쟁이 이제는 선거로 바뀌었다. 언제부턴가 큰 선거때마다 '김종인'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독립운동가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다. 2012년 대선이나 2016년 총선도 사실상 그의 작품이다. 특히 4년 전 총선에서는 '선거 장인'으로서의 성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을 쳐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설명을 요구하자 "'정무적 판단'이면 됐지 다른 이유가 뭐 필요하냐"고 했다. 그러고는 '뼈박' '피박' 싸움에 바쁘던 여당을 보란듯이 꺾고 승리를 낚아챘다. 그러나 선거는 이겼어도 곧 내쳐져 다시 재야로 돌아가던 이도 그였다.

▶이번 4·15총선에서도 그는 야당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컴백했다. 일성이 "못살겠다 갈아보자."이다. 그러나 4년 전과는 형편이 많이 다른 듯 하다. 그때는 밥상부터 직접 차렸지만 이제는 이미 차려진 밥상을 들고 영업에 나서야 한다. 운동장도 많이 기울어져 있다.

4년전에도, 이번에도 그는 "나라 장래가 걱정돼서"라고 했다. 그간에도 '선거 기술자'들은 많았다. 1971년까지 DJ 곁을 지켰던 엄창록씨는 '선거판의 여우'라 불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처럼 자유자재로 진영을 넘나드는 이는 없었다. 그가 '미완의 선거책사'로 끝날지, 아니면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희대의 경세가'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기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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