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경비원 한 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 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주던 낙지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주던
창동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 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 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

'촉도(蜀道)'라는 말은 '촉으로 통하는 험난한 길'이란 뜻으로, 힘겨운 난관 또는 거친 인생행로를 일컫는 말이다. 삼국지 유비가 세운 나라가 촉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위태로운 길일지라도 절세의 자연풍광 위에 촉도는 놓여 졌고, 그 길을 건너 한 나라를 건설했다.

최근 불어 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실물경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포의 애환이 담긴 임대, 폐업, 파산 … 등의 문구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기업가,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누구보다 깊어 온 국민은 공감을 넘어 통감의 지경이 되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속담이 있지만, 거미에게는 허공에 치는 밥줄이자 밧줄인 생명줄(거미줄)이 있으나, 워낙 살기 어려울 땐 거미에게 물어봐도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 방법을 일러줄리 만무하다. 우리 역사에 '꼬리를 자르려다 퇴로까지 막아버린' 실수가 몇 차례 있었다손 치더라도, 우리 삶에 원래 퇴로는 없다. 태어나는 순간 퇴로는 막혀버리고 오직 끝끝내 잔도를 걸어 평지에 이르러야할 직진만이 있을 뿐이다.

길은 만들면 길이 된다. 시인은 한낱 미물인 거미에게 물어 답을 구하고자 하지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거미보다 수천 배 영민한 인간이 왜 산 입에 거미줄 치는 밥줄과 밧줄을 구분 못해 촉도에 머물러 있겠는가. 일시적으로 세계의 소통망이 끊어진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라도 잠시나마 지금 막 피어나는 진달래, 개나리, 자목련, 산수유 이런 봄꽃들을 눈동자에 심어놓고 볼 일이다. 일 년에 딱 한번 볼 수 있는 봄꽃들을 시름 속에 놓쳐버리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권영준 시인, 인천 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