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중 만들어진 인권선언의 제1조이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서 보여준 인권선언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타자(다른 사람)'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유령인간처럼 취급하거나 애써 모른 척한다.
국가 이익 앞에, 계급 이익 앞에, 자본 이익 앞에, 인간의 왜곡된 욕망 앞에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은 언제나 '타자'의 존재로 남게 된다. 그리고 '타자'는 차별과 혐오,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군 기지촌 성매매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아픈 역사의 단면이다.
국가는 여성의 몸을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도구화했다. 당시 기지촌 관련 산업이 대한민국 전체 GNP의 25%를 차지했다. 성매매 여성 1인이 버는 외화에 가족, 지역 사회, 국가가 기생한 것이다.
국가는 이들을 '애국자'라며 치켜 세웠다.
하지만 기지촌 여성들은 양공주, 양색시 등으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았다.
결국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의 지휘 아래 애국심을 빙자한 인권유린으로 억압당하고 사회적으로 윤락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개인의 삶을 잃어갔다.
사회는 여전히 침묵했다. 침묵은 곧 피해자를 억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 피해 여성들이 더는 숨지 않도록 우리가 말해야 한다. 그들의 문제를 타자의 문제가 아닌 '우리'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
기지촌 알리기에 앞장 섰던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자는 어디선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라며 "당사자들이 서로 말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 내부의 곪은 상처를 드러내야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새살을 돋게 할 수 있다. 진정한 정의는 올바르지 않은 정의를 똑바로 마주할 때야 실현할 수 있는 가치임을 되새겨야 한다.
/글 최남춘·사진 이성철 기자 baikal@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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