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혼란이라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서 보낸 시간이 어언 한 달을 넘어가고 있다. 내가 이번에 경험한 사실은 만일 우리가 이 초유의 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을 이겨낸 모범국이 된다면 정부도, 고관대작도, 드라이브스루도 아닌 우리가, 우리 이웃들의 소리 없는, 그러나 고귀한 실천이 칭찬받아 마땅한 제일 중요한 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아파트 옆 동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우리 아파트 누구도 패닉과 사재기에 나서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내게 가장 큰 믿음과 안심을 가져온 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신속한 안내 방송이었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확진자의 동선과 방역 상황 그리고 주민 접촉 여부를 CCTV와 보건소 방역관계자들의 현장 확인 등을 통해 전해준 안내 방송에 주민들은 어떤 불안감도 느끼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대구는 그냥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게 아니었다.
대구 시민의 절제와 인내 그리고 자발적 헌신의 결과물로 '봉쇄와 차단'이 아닌 방법으로 대구가 빠르게 패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출근하고 술자리도 하던 말, 그대로 일상을 계속하던 우리와 달리, 지인의 말로 확인한 대구 사람들은 4주 가까이 온 가족이 최소한의 이동만 하며 엄격한 자가격리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평범하고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이런 실천이 없었다면 정부의 총력전도 이처럼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건의료인의 전문성과 직업의식이 눈물겹다.
친한 약사 친구가 있다. 매스컴에선 날이면 날마다 마스크 대란의 공포를 확산해내며 공적 마스크 판매를 담당하는 약국마다 고성과 악다구니와 장사진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얼마 전 통화에서 "힘들지"라고 물었더니 "해야 하는 일 하는 건데 뭐"라는 쿨한 반응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괜찮아요. 꼭 필요한 사람 먼저 쓰세요.
이 혼란의 와중에 성숙하다 못해 존경스러운 우리의 시민들이 펼치는 또 하나의 풍경은 고성능의 KF80이나 KF95 등 공적 마스크를 꼭 필요한 환자나 환자 가족 그리고 의료진에게 양보하고, "면 마스크를 빨아 쓰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모습이다.

'#나는_괜찮아요. #천마 사용 #환자 먼저_의료진 먼저' 등 SNS를 통해 속속들이 천 마스크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인증하는 시민들과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실제 실천하는 지인들이 그들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패닉에 빠져 휴지 대란과 마스크, 손 세정제 그리고 생필품 사재기에 몸싸움까지 벌이는 모습과 대비되며 우리 시민 사회의 성숙함과 높은 도덕적 역량을 확인하고 자부심과 긍지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 자리에서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이런 모습이 이 나라를 지키고 위대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환란의 한가운데 진정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서동수 서동수디자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