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치성향으로나 인물 됨됨이로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주민들의 평도 비슷했기에 서울 관악구와 세종시에서 국회의원 7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가 심상찮다.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며 4·15총선 불출마 선언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쓰임새가 크다"며 총선 출마를 권한 것이 첫 이상 기류다. 정치인의 약속과 신뢰를 중시하는 이해찬답지 않다. 임종석이 맞장구치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둘 다 망신을 당할 뻔했다.

한 언론에 '민주당만 빼고'라는 기고문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사안은 명확한 오버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해찬이 작은 일에 흥분해 자충수를 뒀다는 탄식이 터져나왔고, 무명의 임 교수는 단숨에 전국구 인물로 떠올랐다. 실수 후 뒷처리도 미숙했다. 여론에 밀려 고발을 취하했지만 사과는 안하고 버텨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대신 사과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잘못보다 사과하지 않는 것이 더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는 법이다.

결정적인 이미지 훼손은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해찬은 여러 차례 "비례정당 창당 안한다"고 공언해 왔다. "(비례정당은)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는 말까지 했다. 비례정당 창당은 당원투표라는 형식을 거치기는 했지만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결정했으며, 그 중심에는 이해찬이 있다. 결국 비례정당(더불어시민당)이 만들어졌지만, 약속 파기에 대한 비난과 비례정당 공천 잡음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비례정당 창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해온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사실상 기획·주도했다는 분석이 있지만, 그렇다면 이해찬이 양정철에게 휘둘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찌됐든 이해찬 특유의 냉철한 판단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수군거림이 나온다.

더 심각한 얘기도 들린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이해찬에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난 11일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김해영 최고위원이 '비례위성정당 창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자 그의 발언을 회의록에서 삭제한 뒤 언론에 배포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한쪽에서는 '이해찬 리더십으로 이번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해찬은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정치를 마무리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성품으로 볼 때 빈말은 아닐 것이다. 신중한 언행으로 30년에 걸친 정치 여정을 잘 마무리해 '그래도 이해찬'이라는 말을 듣고 무대에서 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