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인류 공통의 과제가 된 전염병
[목요논단] 인류 공통의 과제가 된 전염병
  • 인천일보
  • 승인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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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라는 저서를 통해서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증하려고 했다. 전염병에 대한 역사 기록이 대부분 간략하고 엉성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추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료가 풍부한 서구 문명의 전염병에 관한 서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한 배경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주로 이질적인 인간 집단 사이의 교류와 접촉의 과정에서 파괴적인 전염병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6세기에 발생해 8세기 중엽까지 유럽 사회를 괴롭혔던 첫번째 페스트는 인도 동북부 또는 중앙아프리카로부터 지중해 해역으로 유입되었는데, 페스트균을 매개하는 설치류 동물이 선박에 실려 지중해로 유입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를 통한 활발한 교역이 전염병을 함께 가져온 것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14세기의 흑사병은 유럽을 강타한 두번째 페스트였다. 1346년부터 1350년 사이에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럽의 인구가 회복되기까지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크림반도의 교역 중심지를 공격한 몽골 군대에서 처음 발생한 흑사병은 짧은 시간에 교역 루트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페스트는 17세기까지 자주 반복적으로 발생하였고, 20세기까지도 간헐적으로 발병해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다. 위의 두 사례와 달리, 유럽이 전염병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16세기에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면서, 유럽에서는 이미 풍토병으로 자리잡은 천연두나 홍역도 함께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되었다. 유사한 질병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원주민들은 새로운 질병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경험했다. 그 충격은 기존의 사회 구조와 관념 체계를 무너뜨렸고, 결과적으로 유럽은 소규모 자원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다.

한편, 구범진 교수의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이라는 책에서는 병자호란 때 청군이 전쟁을 서둘러 끝내려 한 이유를 천연두에 대한 공포에서 찾고 있다. 후금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한족 및 조선인들과의 접촉이 늘어났는데, 이들에게는 이미 풍토병으로 자리잡은 천연두가 만주인들에게는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전염병이었고, 그만큼 더 치명적인 병이었다. 누르하치 일가에서도 천연두로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고, 만주인 지배층에서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일종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유사한 다양한 행동 양식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없었던 홍타이지는 조선에서 천연두에 걸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며 서둘러 전쟁을 끝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큰 규모의 전염병은 주로 이질적인 인간 집단 사이의 접촉 과정에서 발생했다.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 전체에 낯선 바이러스라는 점에서 위의 사례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우한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한은 전근대 시기부터 창쟝(長江)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수운 교통망의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베이징과 우한을 연결하는 징한철로(京漢鐵路), 우한과 광저우를 연결하는 유에한철로가 개통되면서, 중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철도망의 핵심 거점이 되었다. 1949년에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석권하면서 외부 세계와의 교류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개혁개방 이전에도 우한은 국내 교통망의 중심 지위를 유지했다. 이후 중국의 대외 개방이 대폭 확대된 1990년대 초기에 우한도 다시 외부 세계에 개방되었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현재의 세계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세계 각지의 인간 집단이 활발하게 접촉하며 교류하는 세계이다. 교류의 확대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전염병의 확산 속도도 가속화했다. 특정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 섞인 비난보다는 인류 공동의 대응 체계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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