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프마켓 담장과 군용 철도.

1990년대 초 부평 백마장의 K아파트에서 5년간 살았다. 가끔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곤 했는데 단지 끝까지 다다르면 길이 끊겼다. '경고(WARNING)'판이 붙어 있는 미군 부대 담장이 길을 막았다. 그 안이 궁금해 가슴 졸이며 까치발 들고 금단(禁斷)의 땅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한참 뒤에 그 부대의 이름이 '캠프마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부지가 80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지역에서는 이 터의 활용에 대해 역사 공원, 대형 병원, 대학 분교, 박물관, 문화 예술 공간 등 백가쟁명식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땅은 활용에 앞서 먼저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 캠프마켓은 병든 채 우리 품에 안겼다. 부대 내 토양이 고농도 다이옥신류로 심하게 오염된 상태다. 정화 작업을 위해 우선 1단계 A구역 23개 건축물 중 16개 동을 허물고 탄약고 벙커, 군견 막사 등 7개 동만 남겼다.

철거 전 인천시립박물관은 모든 건물을 몇 차례 걸쳐 훑었다. 질곡으로 뒤범벅된 그 땅에서 주둔군의 행적과 우리의 아픔이 오버랩된 '흔적'들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의 시간이 얹혀 있지 않아 낯설게 다가오는 땅. 그 지층 속에 묻힌 역사의 기억과 흔적 그리고 망각을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오염된 토양은 태우기도 하고 씻어내서 정화 작업을 할 모양인데 진정한 정화는 우리 가슴에 깊이 박혀 있는 '옹이'를 빼내는 것이다.

이미 공간 회복에 대한 첫걸음은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 근현대사의 응축된 수난사를 품고 있는 그 질곡의 땅에서 인천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부평 K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때 영화 '백 튜더 퓨처' 시리즈가 큰 인기였다. 비디오가게에서는 흔히 '벽 뚫고 퓨처'라고 통용되었다. 이제 까치발로 몰래 보기가 아니라 부대 벽을 뚫고 미래로 나갈 때가 왔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