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간 속에서도 교회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만들어낸 공포와 불확실성은 유령처럼 이 땅을 배회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응책만 잘 마련하면 그 충격의 강도는 감내할 수준이라 호언장담했지만 예측할 수 없었던 확진자 증가는 무서운 파괴력으로 국가의 존망을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 국민의 사투는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혼돈의 순간에도 고난에 대처하는 숨겨진 영웅들 덕분에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밤이 지나면 생명의 아침이 다가오듯이 이 고난이야말로 감추어진 또 다른 복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이 난국에 대한 나의 믿음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것인지, 그리고 위기의 한복판에 서서 교회는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응답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극한 혼란이 진행되고 있고 국가의 안전망이 흔들리자 국가는 교회 전통 이전에 사회적 책임을 권하며 교회들을 향하여 교회 안에서의 예배보다는 가정에서 모여 예배드리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보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은 흔들리는 교회의 위치를 견고하게 했으며 과연 교회야말로 이 땅의 소망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금의 현상은 전장의 총탄을 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때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길에 버려져 밟히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생명과 안전이 교회의 최우선적 관심사가 돼야 합니다.

물론 교회 전례를 따라 예배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이 소중하지만 이로 인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 또한 위선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가슴이 창조세계와 공동체를 향한 책임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도 예배이듯 가정 안에서 드리는 예배 또한 예배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 몇몇 교회에서 발생한 예배당 안에서의 코로나 확산 소식은 사회적 비난의 실마리를 제공한 예이기도 하지만, 몇몇 지도자들의 잘못된 확신 덕분에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야 말았습니다. 불철주야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과 공무원 또한 우리의 가족이며 성도들입니다. 그들의 요청을 불신앙으로 단죄하며 오히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에 믿음을 결부시켜 사회 안전망을 흔드는 모습은 너무도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무지와 독선과 편견에 사로잡힌 몇몇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망인 마스크 쓰기와 손 소독조차도 믿음이 없기에 두려워하는 일이라는 주장은 신앙과는 아무 관계없는 무지일 뿐입니다. 그들은 마치 인생의 모든 해답을 가지는 것처럼 처신합니다. 사람들을 굳어진 교리로 옭아매어 이성적 사유를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와 주의 교회가 이 땅에 소망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네로의 대 박해 속에서 순교를 앞에 둔 베드로 사도의 편지에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반드시 덕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덕이란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마땅히 드러내야 할 의로운 모습과 생활로서, 그 믿음의 진실성과 생명력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혼란의 시대에 더욱 귀한 것은 우리들의 믿음이 사회 속에 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웨슬리는 피를 토하듯 증언합니다. "참된 예배는 형식과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심으로 그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는 일이다." 어둠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또한 사실이지만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 또한 불신앙입니다.

특별히 감염 예방을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는 당국자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 환란의 시간을 반드시 이길 것이고 극복해 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최훈철 강화 양진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