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산 너머로, 인간은 삶 너머로"...권력과 인간의 생로병사

 

▲ 영화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 중 루이 14세가 식사하는 장면.


"태양과 죽음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집무실 안, 루이 14세가 턱을 괴고 앉아 라 로슈푸코의 잠언을 되뇌며 생각에 잠긴다.

영화 '루이 14세의 권력 쟁취'(1966)의 끝 장면은 첫 장면과 이어지며 뫼비우스의 띠를 이룬다.

병든 권력이 내뿜는 지독한 죽음의 냄새로 시작된 영화는 20년간 프랑스의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수석대신 마자랭의 죽음과 함께 죽었던 권력이 루이 14세에게서 다시 부활하여 생명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절정에 이르렀을 때 끝난다.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 '누벨바그의 아버지', '현대영화의 창안자' 등 수식어로 빛나는 이탈리아 거장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후기 작품이다.

로셀리니 감독은 마자랭이 죽은 후 루이 14세가 국무참사회 장악, 재무총관 푸케 체포, 화려한 의상 고안, 베르사유 궁전 건설, 궁정예절 정비 등을 통해 귀족들을 길들이며 절대 권력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을 극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권력 메커니즘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역사 교과서 영화 속 사물들은 소품이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인물들과 더불어 중요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감독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생로병사의 자연법칙을 따르는 인물과 사물 간의 관계를 통해 권력 메커니즘의 윤곽과 함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예시한다.

예를 들면 영화 시작 20분 후에야 화면에 등장하는 루이 14세의 침실은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품들로 꾸며진 마자랭의 침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권력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이 장면과는 대조적으로 엔딩 장면에서 등장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가 마침내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음을 알려준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에서 장엄한 종교의식처럼 거행되는 루이 14세의 식사 장면은 요리 행렬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 그의 왕성한 식욕과 더불어 끊임없는 권력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런 왕의 모습을 경외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귀족들은 이전의 거만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진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나무들처럼 무기력하고 순종적일 뿐이다.

드디어 루이 14세는 태양신 아폴론의 화신으로 신격화되며 신화 속 '태양왕'으로 등극한다.

그런데 이 최고의 순간에 그의 코끝엔 마자랭에게서 맡은 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엄습한다.

'영구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진리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떠난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에게도, 불로초를 찾아 헤맨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에게도 비껴가지 않았다.

물론 태양신으로 자처한 '태양왕' 루이 14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루이 14세는 자신이 죽은 후 100년도 안 되어 직계후손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더더군다나 이 순간 절대왕권도 단두대의 칼날에 죽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았을 때 인간과 사물은 생로병사의 법칙에 따라 아주 짧은 찰나에 반짝이는 섬광 같은 것인데 하물며 실체도 없는 권력은 어떻겠는가?

그러니 권력, 부, 명예 모두를 가진 솔로몬 왕이 죽음에 이르러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할 수밖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