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별의 별 비유와 수사가 등장했지만 인상적인 것이 있다. 유진홍 가톨릭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현 시국에 대해 "지켜야 할 성벽 위에 올라서서 깊은 시름 속에 바라보니 성문은 열렸고, 바이러스는 안시성을 함락시키려는 당나라군처럼 물밀듯이 밀려온다. 기세에 밀리니 문을 닫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수성전은 끝났고 이제부터는 백병전"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백병전'이다. 백병전은 '총검, 신체 등을 사용해 적과 싸우는 육박전'이다. 즉 제대로 된 무기가 떨어졌을 때 무엇이든 동원해 마구 싸우는 처절한 전투다.

백병전의 징후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대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넘쳐나지만 의료진은 물론 병상시설과 물자마저 모자라 절절 맨다. 병상이 비기만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200여명에 달한다. 공공의료인력 투입이 절실하지만 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호복을 입은 채 모든 작업을 수행해야 하기에 온몸이 땀에 젖고 다른 사람과 교대할 무렵이면 파김치가 된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의료진은 제때 끼니를 챙기기 어려워 식은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빠듯한 근무 스케줄로 구석에서 쪽잠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한 간호사는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방호복마저 아껴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악전고투다.

게다가 서울 구로구 콜센터와 경기도 성남 교회 집단감염으로 가뜩이나 힘에 부치는 백병전의 자원조차 쪼개야 하는 실정이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지만, 이를 무력화시키는 일도 벌어진다. 분당제생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간호조무사 18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루 확진자가 지난주부터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15일부터 두 자리수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있다고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안다. 분명한 것은 백병전은 어느 시점에 산발전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우리가 승리한다는 점이다. 국민간의 적의를 부추기던 선동을 누르고, 선의를 나누며 다진 연대감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우리 사회는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인상 깊은 유대를 보여주었다. 방역시스템은 한때 다른 나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뼈저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이것은 대처를 잘했지만 이런 건 부족했다"며 '코로나 백서'를 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도 온몸으로 싸워야 하는 백병전이 진행형이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