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명맥 이어와"

 

 

 

 

 

 

 

▲ 이갑영 교수는
▲ 이갑영 교수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눈앞의 자본가와 싸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자를 만들어낸 자본주의와 투쟁할 수 밖에 없다"며 "노동자들은 노동자정당을 통해 자본주의 철폐라는 역사적 투쟁으로 전진한다"고 말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자료 수집 어려운 현실에도 10여년 매달린 작업 마무리
'맑스경제학' 강의하다 정년…"북 '무상경제정책' 연구 계획"


"인천은 '노동자운동의 메카' 심지어 '제2의 모스크바'로 불렸습니다. 노동자 조직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 인천 개항장이었고 50년대 부두노동자들의 투쟁에 이어 70~80년대 사회적 변혁기에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가톨릭노동청년회, 민중교회 등의 선진노동자층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노동자운동의 새 길을 만들었고 우리 사회의 민주노조운동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 바로 인천입니다."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맑스경제학'을 강의하는 이갑영 교수가 개항 이후 130여년간의 인천노동자운동사를 정리한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를 최근 출간했다.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벌이는 운동이라는 뜻에서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자운동'이란 용어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이 벌이는 운동은 그들이 바라는 '희망'을 찾기위한 것이고 '희망'이 사라지면 운동도 꺾이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운동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희망'을 나누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들의 '희망 나누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 교수는 이번 저서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에 1891년부터 2015년까지 인천에서 전개된 130여년의 노동자운동의 연표를 정리해서 80쪽이 넘는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의 노동자운동사를 매년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나 사실을 표로 정리한 것은 처음 시도하는 의미있는 작업으로 이 교수가 10여년간 매달려오면서 이번에는 꼭 끝내야겠다는 각오로 마무리해서 얻은 결실이다.

"무엇보다 자료를 모으기가 어려웠습니다. 엄혹한 시절, 자신을 지키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자료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노동자운동이 단순히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그치는 것인가, 노동자 계급이 어떤 계기로 성장했고 어떤 조건에서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구분하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노동자조직의 결성과 갈등에 얽힌 내적 역학관계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았고 작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연표를 통해 인천 개항장에 나타난 최초의 노동자조직은 '도중(都中)'이라고 밝혀냈다. '인첩(仁牒)'이란 항만 관련 보고서 1891년 1월18일자에 기록된 부두노동자의 조직인 '도중'은 과거 조선의 육의전(六矣廛) 상인들의 조직을 배우고 익혀서 활용한 것이다.

"인천에는 1900년대에 부두, 철도, 목공, 정미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고 1920년에는 노동야학도 설립할 정도로 노동자운동의 뿌리가 깊습니다. 특히 1919년 12월부터 이어진 정미소에서 쌀과 쌀겨를 고르던 '선미(選米)여공'의 임금인상 파업은 70년대 '똥물투척사건'으로 유명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만큼 노동자운동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인천의 노동자운동사에는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인해협), 인천지역노동자투쟁동맹(인노맹) 등의 조직과 '87년 노동자대투쟁', 90년대 대우자동차 투쟁 등의 굵직한 사건이 있었지만 30년대 인천부두노동자 조직을 주도하고 '빨치산'의 이현상 등과 함께 '적색노조'와 조선노동당에 깊숙이 개입했던 이재유를 주목해야 할 인물로 꼽으며, 노동자운동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싸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정치투쟁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는 단결뿐이고 자신의 이해를 지키고 요구를 관철하려 노동조합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단순히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경제투쟁으로 한정 짓는 것은 잘못입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와 자본주의 철폐라는 역사적 투쟁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경제투쟁은 오늘의 이해를 반영하지만 정치투쟁은 내일의 이해를 담기 때문이지요."

30여년을 대학에서 맑스주의와 자본주의를 연구하고 강의해온 이 교수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한국, 일본을 거쳐 2~3개월 만에 유럽과 미국까지 강타하며 '팬데믹'이 선포될 정도로 전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코로나 공황'이 예상된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달 정년을 맞은 이 교수는 "인천대 국립화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일했던 7년 동안이 가장 보람을 느낀 기간"이라며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가 인천을 노동자운동의 메카로 만든 수많은 노동운동가의 기억이나 평가, 반성 같은 것을 담는 연구가 이루어지는데 디딤돌 정도만 되어도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호는 '반보(半步)'다. 모든일에 반발짝만 앞서가자는 뜻이 담겨있다.

"앞으로 북한의 '무상경제정책'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려고 해요. 또 인천대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중국과 합작으로 훈춘(琿春)지역에 대학을 설립하려는 일도 마무리 지으려면 다시 바빠질 것 같아요."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계급정치 향한 인천 노동자의 진화에 주목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

 

▲ 이갑영 저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 이갑영 저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개항 이후 130여년간의 인천노동자운동사를 정리한 책 <그들은 희망을 나누었다>(사진)는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부두가 낳은 사람들'은 담군(擔軍)에서 노동자로, 노동공제회에서 혁명적 노동조합까지, 직업운동가들의 수고 등으로 나눠 정미소의 여공들과 최초의 조직인 '도중', 인천에서 있었던 '최초의 시도들', 인천지구노동조합평의회 등을 다뤘다.

2부 '노동자운동의 메카'에서는 황색운동을 넘어서, 깨어나는 노동자들, 노동자의 학교 등으로 구분해서 인천지구미군자유노조와 '수출, 성장 그리고 공업화', '노동현장으로 들어간 십자가들', '땅 짚고 헤엄친 독점자본', '5·3민주항쟁의 노동자들' 등을 살펴봤다.

3부 '계급정치를 향하여'는 노동자대투쟁.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길을 만드는 사람들 등을 통해 '인노협의 수고', '꺼지지 않는 대우자동차의 불길', '진보정당의 흐름', '멀고 먼 계급정치' 등을 거론했다.

4부 '인천의 노동자운동 연표'에는 1891년 1월18일 최초로 만들어진 '도중(都中)'이라는 노동자 조직의 출현부터 1940년대 해방 이후 노동자운동, 1970년대 동일방직 투쟁,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90년대 이후 대우자동차 투쟁, 2000년 전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투쟁 등을 거쳐 2015년 11월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인천지부 파업투쟁을 마지막으로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