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의 꿈 품고 지은 계획도시 총 둘레 5.7㎞…쉬엄쉬엄 걷기 좋아
반백년 매향통닭, 전통 방식 그대로 튀김옷 안 입힌 생닭 가마솥에 튀겨
수원갈비 원조 화춘옥, 해장국도 유명…갈빗살 넣은 그맛, 유치회관 계승

 

18세기 조선에, 요즘으로 치자면 세종시 같은 계획 신도시가 세워졌다. 바로 수원이다. 경수대로를 타고 수원으로 들어서면 지지대 고개를 처음 만난다. 정조는 내탕금 1000냥을 하사해 이곳에서부터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현릉원까지 소나무 500주를 심게 했다. 왕이 만든 신도시에 가로수로 선택된 소나무들, 그 몇 그루가 여전히 남아 우리를 맞는다. 200년 된 신도시 수원을 걸어본다.

#위풍당당 세계문화유산_수원화성
화성은 참 단정하다.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처럼 흐트러진 곳이 없다. 문화재라고 하면 느껴지는 예스럽고 소박한 멋보다는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이 매끈한 인상이 먼저 다가온다. 화성은 정조가 수도 이전의 꿈을 품고 만든 백퍼센트 신도시다. 요즘으로 치자면 세종시에 견줄만하다. 200년 세월이 지났어도 화성 성곽에선 여전히 '신도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최고의 기술로 쌓아 올린 첨단의 기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장안문이나 팔달문이 위풍당당하고 방화수류정은 아래서 봐도 위에서 봐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화성의 진짜 매력은 정해진 자리에서 기념촬영만 하고 돌아가서는 알 수 없다. 한가한 오전,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가는 성벽 그늘 밑에서 동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둑을 둔다. 오후 3~4시면 성곽길은 교복 입은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터질 듯하다. 그 아이들은 세계문화유산을 놀이터 마냥 휘휘 돌아 논다. 여전히 여름이면 성곽 밑 큰 나무 아래에서 헐렁한 차림으로 부채를 부치는 헐렁한 노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화성은 수원사람들에겐 길이자 휴식처다. 신을 벗고 화홍문이며 방화수류정에 올라가 보자. 거기엔 미술 숙제하는 학생들의 무리, 맥주 한잔 걸치고 바람 쐬러 나온 동네 주민,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과 아이들,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온 아마추어 사진가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감상하고 감탄한다.

#5대문 따라 떠나는 역사여행_성곽길순례
남한산성이나 행주산성과 달리 화성은 평지에 세운 성이다. 성곽 전체는 총 5.7㎞로 한나절 쉬어가며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화서문에서 서장대에 이르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탄해서 걷기에 좋다. 성이 시내 한가운데 있음에도 팔달문 앞을 제외하고는 차도를 건너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차도로 성곽이 끊어진 구간에는 구름다리를 설치해 성곽 위를 걸으며 온전히 순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나마도 걷기가 힘에 부쳐 더 편하게 둘러보고 싶다면 화성어차를 타면 된다.

#수원 통닭거리 터줏대감_매향통닭
'한 집 건너 치킨집'이라니 흔한게 닭이지만 수원에 가면 통닭거리를 지나치기 아쉽다. 이곳엔 '치킨'이 아니라 가마솥에 튀겨내는 옛날 시장 통닭집이 성황이다. 전통의 강호인 진미통닭, 용성통닭을 필두로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은 치킨타운, 남문통닭 등 골목 전체가 닭집이다. 맛으로 최고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화성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매향통닭은 이 통닭거리의 출발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매향통닭은 1970년 사업자등록증을 냈는데 이것은 공식적으로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다른 통닭집들이 요즘 사람들 입맛에 따라 튀김옷을 입혀 튀기지만 여전히 매향통닭은 튀김옷 없이 생닭 그대로를 기름 가마솥에 넣어 튀긴다. 그러니 양념이니 반반이니 하고 고를 것 없이 메뉴도 닭 한 마리 딱 하나다. 직영이든 가맹이든 다른 매장 없이 오롯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 어스름 해가 내리면 닭 튀기는 가마솥 앞에 줄이 늘어선다. 50년을 향해 가는 매향의 고집을 사랑하는 줄이다.

#수원갈비를 먹는 또 하나의 방법, 해장국
수원은 조선 정조가 화성을 세우고 이곳을 농상의 중심 도시로 만들었던 시절부터 우시장이 유명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원의 음식은 단연 수원갈비다. 그냥 굽는게 아니라 소갈비를 얇게 저며서 소금과 마늘, 파로 심심하게 간을 한 뒤 굽는다. 수원 영동시장의 싸전거리에서 1940년대부터 17㎝ 남짓 되는 소 갈빗대를 숯불에 구워내기 시작한 '화춘옥'이 수원갈비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 별스러울 것도 없는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금세 입소문이 난 가게를 따라 우후죽순 생겨난 20여 곳의 갈비집들이 수원갈비의 명성을 높였다.

화춘옥이 처음부터 갈비구이를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 집의 본래 메뉴는 다름 아닌 해장국, 본래 숙취를 푼다는 뜻을 가진 '해정국'이 변하여 '해장국'이 된 것인데, 이 같은 음식 이름이 있는 것을 보면 옛 사람들도 어지간히 술을 즐긴 모양이다. 지역마다 다양한 해장국이 있지만 특히 중부지방의 해장국은 사골을 푹 고아서 배추와 콩나물, 선지를 넣어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인심 좋은 화춘옥의 해장국은 여기에다 갈비를 푸짐하게 넣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화춘옥의 그 시절 해장국을 맛볼 길은 없지만 가끔 '해정'할 일 없이도 들르게 되는 수원의 해장국집은 바로 유치회관이다. 아마도 화춘옥이 지금도 해장국을 만들고 있다면 이런 맛이 아니었을까 떠올려보게 하는 맛이다. 사골을 기본으로 하는 국물에 갈빗살을 푸짐하게 넣어주는 것은 물론 대식가들을 위해 양껏 드시라고 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맛의 기준이 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선지를 그릇에 따로 담아내는 독특한 상차림도 유치회관의 명물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를 부담없이 즐기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이다.
먹는 일은 입이 누리는 호사다. 수원갈비는 그런 호사에 제격인 음식이다. 그만큼 소갈비는 지금도 값비싼 외식 메뉴인데 화춘옥이 수원갈비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쉽게 즐길 음식은 아니었을 터. 수원의 대표 음식은 누가 뭐래도 수원갈비이지만, 어쩌면 수원갈비를 시작한 화춘옥의 본래 메뉴였던 갈빗살 푸짐한 해장국이야말로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던 수원의 음식이 아니었을까. 그런 수원의 갈비 해장국이 궁금한 이들에게 주저없이 유치회관을 권한다.

/출처=경기문화재단 지지씨 가이드1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지지씨 가이드1(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