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트'
▲ 영화 '하트' 스틸 컷

"유부남한테 유부남 상담하러 온 거야?"

영화 '하트'는 도입부부터 펄떡이는 물고기 같은 대화들이 오고간다. 어떤 유부남을 좋아하는 가영이 그전부터 사귀던 성범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길을 모색한다는 줄거리다. 성범 역시 결혼해 어린 아이까지 있는 또 다른 유부남이다.

이 영화의 정가영 감독은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로 출연도 하고 연출도 맡았다. 전작 '밤치기', '비치온더비치' 등을 통해 독립영화계 팬 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도 전작들처럼 액자식 구성에 남녀가 주고받는 현실대화가 서사를 이끄는 주요 동력으로 등장한다. 한 가지 추가됐다면 왜 이런 영화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 하는지에 대한 자기 고백이다.
가영이 진짜 유부남을 좋아하는 마음이 괴로워 성범을 찾아간 걸까, 뜸했던 성범이 보고 싶어 이걸 핑계 삼았던 걸까 헷갈릴 때 쯤 프레임이 갑자기 바뀐다. 정가영 감독이 배우를 만나 영화 '하트' 배우로 캐스팅하는 과정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장면은 액자 속 액자의 이야기였다.
캐스팅하려는 이 배우는 우리가 묻고 싶은걸 대신 질문한다. "감독님 본인 얘기에요? 이런 걸 영화로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감독은 "그 유부남 이제 안 만나요. 우리 삶에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이상한 관계에 대해 지나가듯이 얘기해보고 싶었어요"라며 최선을 다해 제작의도를 풀이하지만 배우도 감독도 찝찝하긴 매한가지다.

감독은 설익은 본인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맺어온 관계들이 언제나 명쾌하고 투명하게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하려 한다. 오히려 모호하고 불안한 관계에 이끌린다는 커밍아웃인 셈이다.

더 나아가 그는 원했던 배우와의 캐스팅에는 실패했지만 해당 배우와 또 다른 이상한 관계를 형성했다. 앞으로 정가영표 연애영화가 계속 복제될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