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기록된 세월…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최종 후보에 오른 영화 '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이 손가락으로 카메라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미국 손잡고 세월호 사건 전세계 고발

온라인 배급단체의 제의로 제작 결심
참사 당시 현장영상과 통화기록 바탕
인터뷰·자막으로 최대한 담담하게 구성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에 집중


-한국 다큐 희망있지만 혼자선 역부족

이번 성과는 미국 제작파트너 있어 가능
비인기 장르도 과감한 투자 이뤄져야






"세월호 유가족이 (영화를) 전 세계에 많이 알려달라고 했는데 아카데미상 후보가 되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 단편다큐멘터리 부문 노미네이션의 성과를 이뤄낸 29분짜리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 영화는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그날 현장에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진다.

구조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참사가 일어나는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그날 그 바다에 "우리가 믿었던 국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접수된 첫 신고로 시작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작품은 그 흔한 내레이션과 음악에 기대지 않고 인터뷰와 자막만으로 담담하게 펼쳐낸다.

이승준 감독은 미국 비영리 온라인 다큐멘터리 제작·배급 단체인 '필드 오브 비전'과 함께 제작을 진행했다.

이 감독은 "세월호 사건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필드 오브 비전'에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고 유가족이나 현장에 있었던 잠수사들이 고통을 안고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촛불 정국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도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 감독은 "이전부터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부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고가 일어난 뒤 현장에서 기록을 계속해왔던 선배·후배 감독들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다"면서 "그 고통 앞에서 촬영한다는 것에 관해 부담도 있었지만 미국 측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드디어 짐을 덜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가 제작을 시작했던 2017년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유가족과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잠수사들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바다에 있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얘기는 그만하라"고 하고, 어떤 정치인들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게 뭐지? 고통이 그곳에 있는데? 고통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고 2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재구성해 차분하게 지켜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정리해보니 국정 운영 철학도, 재난 대응 시스템도 없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왜 잠수사들이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지 보여줘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유족과 생존자, 민간 잠수사 등의 인터뷰도 담겨 있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보여준다.

담담한 전개는 참사 당시 정부 등 구조 책임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했는지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세월호 침몰부터 인양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 사건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30분 안에 담아냈다.

이 감독은 "영화 속 영상과 소리들이 뉴스에서 많이 봤을 것이라 아주 새로운 건 없다"며 "그렇지만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구성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첫 신고부터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고 어떤 풍경이었을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때 어른들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시간순으로 보면 지독한 고통의 시작점이 보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간순으로 다시 보니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국가의 부재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카데미상 후보 출품 자격은 LA지역 극장에서 7일 이상 상영한 영화에 한해 주어진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단편다큐멘터리인 '부재의 기억'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수상하면 자동으로 아카데미상 예비후보 자격이 주어지는 영화제를 공략했다. 2018년 뉴욕 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을 받아 예비후보가 됐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승준 감독은 세계무대로 향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 "희망적이다"고 말했다.

다만 아카데미상 등 성과를 이어가려면 단일 제작사나 창작자 개인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재의 기억'은 미국 제작 파트너가 있어 가능했다"며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처럼 극영화와 다른 장르까지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또 다른 가능성도 열릴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휴먼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라 생각하면 짜릿한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들어진 이야기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실제한다' 생각을 하게 되면 감동도 더했다"면서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좋아했고 그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는 남의 일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월호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도 있느냐고 묻자 "유가족들한테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승준 감독은…암스테르담·선댄스서 인정 받은 '다큐계 봉준호'

 

▲ 이승준 감독이 자신의 최신 작품 '그림자꽃' 포스터 옆에 서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 이승준 감독이 자신의 최신 작품 '그림자꽃' 포스터 옆에 서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이승준 감독은 1971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에 인도에 체류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전쟁 - 인도 비하르 리포트'를 공동 촬영·연출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임을 세상에 알렸다. 이 작품은 제26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TV 다큐 연출작 KBS 수요기획 '들꽃처럼, 두 여자 이야기'(2007)로 한국독립PD상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장애인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극장용 장편 다큐 '달팽이의 별'로 2011년 다큐계 칸영화제로 불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IDFA) 대상, 미국 선댄스다큐멘터리 펀드 등에 선정되는 등 휴먼 다큐멘터리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평창동계올림픽 공식기록영화 (PyeongChang Winter Olympics Official Film) 연출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장편 다큐멘터리 '그림자꽃' 제작과 연출을 맡았다.

어떤 '사건'을 조명한 작품은 '부재의 기억'이 처음이다.

'부재의 기억'은 DOC NYC(뉴욕다큐멘터리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 대상, IDFA(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 Frontlight 부문 초청작, World Press Photo award(암스테르담) Digital Storytelling 부문수상, AFI DOCS(미국영화협회 다큐멘터리상) 단편부문 최우수작품상, 2019년 IDA Award(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 단편부문 노미네이션,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 단편다큐멘터리 부문 노미네이션 등의 성과를 이뤘다.

/오석균 기자 demo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