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의료원장

 

감염병은 문명집단의 흥망을 좌우해 온 바 있다. 6세기 로마인구를 40% 줄이고 1300년대 유럽인 1/3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페스트였고, 1918년 스페인독감은 5000만명 이상의 사망을 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문명의 쇠퇴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감염병에 대해 고찰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점령할 때 사용한 무기류, 기술, 정치조직보다 뿌려댄 전염병이 원주민을 몰살시키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메르스유행 이후 정부는 위기소통 조직과 창구를 만들고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 기관으로 승격하는 등 조직을 개편했고 감염환자의 동선을 구체적으로 공표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의료기관은 감염관리 능력을 병원 수준을 판단하는 주요지표로 삼았고 가족간병 제한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확대되는 등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듯 감염병과 대적하기에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공공의료투자에 여전히 소극적인 것이 그 중 하나이다.

감염병전문병원은 지역 내 감염병 치료를 전담할 핵심 시설이다. 메르스 이후 인천·중부·영남·호남·제주 등 5개 권역에 50병상 규모로 설립하기로 했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안이 호남 한 곳만 형식적으로 지정된 채 표류하고 있었다. 최근 추경을 통해 부랴부랴 재추진을 결정했지만 인천과 제주를 제외한 3개 권역에만 설립하기로 축소한 안으로 진행 중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이번 결정이 어떤 이유로 이뤄진 것일까? 인천시와 시민이 합심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환자가 가장 적게 발생한 것 때문에 감염병전문병원이 인천에는 필요가 없다고 해석한 것일까? 해마다 5000만명의 입국 검역대상자 중 90%가 인천공항과 항만을 통해 들어온다. 연간 7000만명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은 해외여행객 세계 6위라는 우리나라의 국제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감염병전문병원 설치이유가 또 있을까? "감염병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투입된 예산 대비 해당 병원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게 기재부의 논리"라면 인천시는 환자가 적게 발생해 감염병전문병원이 필요 없다는 이유가 통한 것은 아닐까?

인천시가 영종도에 감염병전문병원 기능을 포함한 국립병원 유치에 노력하기로 했다.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하지만 종합병원과 감염병전문병원은 약간 결이 다르다. 감염병전문병원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대규모 발생에 대비하는 시설이다. 의심환자의 빠른 격리와 진단을 통해 국내 전파를 선제적으로 막아내는 역할을 하지만 평상시에는 소수의 인력이 감염병 연구와 결핵, 에이즈 등 격리가 필요한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종합병원의 규모나 역할에 대한 이견이 있을 경우 추진에 난관이 발생할 수 있다. 감염병전문병원 인천유치가 꼭 필요하다면 대안도 필요하다.

인천의료원은 감염병전문병원을 설치운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그간 다양한 신종감염병에 가장 먼저 대처한 실제적 경험이 가장 많이 축적되어있다. 이미 2009년 음압격리병상을 설치하고 가장 많은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한 바 있으며 사스, 에볼라, 메르스 등 해외유입감염병을 막아내는 데 앞장서 왔다. 둘째, 기존 종합병원시설과 인력을 활용해 감염병환자의 일반적 질환에 대한 배후진료기능이 가능하다. 따라서 평상시 운영에 대한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 셋째, 주변인구가 적어 혹시라도 생길 지역감염의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고 헬기를 이용한 환자후송이 용이하다. 넷째, 공항과 항만이 가까워 의심 환자의 신속한 이송이 가능하다. 다섯째, 설립추진 중인 제2인천의료원과 역할 분담을 통해 노인, 재활, 정신의학분야와 감염환자를 돌보는 입원중심병원으로 특화 운영해 공공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사태는 결국 종식되겠지만 신종감염병은 계속 진화, 발생하고 전파방식과 강도를 달리하며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인천광역시의 위상에 걸맞은 감염병전문병원이 반드시 유치 되도록 모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