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국인들이 남녀노소 없이 여행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여행 그 자체 보다는 SNS의 여행 인증 사진에 더 열을 올렸다. 어느새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바티칸 성당 등으로는 성에 차지 않게 됐다. 적어도 남미의 우유니 사막이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쯤 돼야 '좋아요'를 받는다. 한겨울에도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로 떠나들 갔다. 마침내 이들 여행 인증샷에 지쳤거나, 아니면 배가 아픈 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여행을 떠나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달라." 바로 얼마 전의 풍경들이다.

▶신문에 난 사진 한장이 눈길을 끈다.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을 가득 메운 여객기들. 자동차 주차장처럼 주기장은 비행기들이 머무는 곳인가 보다. 코로나의 위력이 하늘을 활개치고 다니던 비행기들을 일거에 묶어 놓은 것이다. '주기난'까지 겹쳐 이제 터미널과 활주로를 잇는 유도로까지 임시 주기장이 돼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극성 세계 방랑벽도 일시에 멈춰섰다. 한달 여 사이에 100여개 여행사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버티는 여행사들도 "취소할 예약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하는 하소연이다.

▶불법 체류 중국인들의 '한국 엑소더스' 행렬도 낯선 풍경이다. 이달 초 제주출입국·외국인청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어디서 숨어있다 나타났는지 자진출국 신고를 위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수원시 영통구의 수원출입국·외국인청에도 요즘 하루 수백명의 불법체류 중국인들이 자진출국을 신고해 온다는 것이다. 이들의 코멘트가 좀 어이없다. "코로나19보다 마스크 안 쓴 한국인이 더 무서워요" "엄마가 '돈도 필요없다. 빨리 돌아오라'고 했어요."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감염주도방역'의 성과라고 했다.

▶코로나 시대를 당해 어쩔 줄 몰라하는 군상들이 또 있다. 하루 저녁이라도 그냥 넘기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술꾼들이다. 탁상 달력을 빼곡히 채웠던 주연(酒宴) 스케줄이 하나 둘 취소되더니 텅 비었다. '벙개'도 치지않는다. 겁 없는 베이비부머 술꾼들도 꼬리를 내렸다. "이전처럼 자꾸 돌아다니며 마시면 손자 접견권도 박탈할 것"이라는 겁박 때문이다. 날도 저물기 전 귀가하는 '무미건조', '바른생활'의 나날이다. 남은 선택권이랬자 '홈술'과 '재택음주'밖에 없다. 마트에서 카트마다 인천 술 소성주를 차곡차곡 담는 이들이 그들이다. 누구는 이참에 쌀과 누룩, 물만으로 막걸리를 빚었다고 한다. 어떻게 빚느냐고. 유튜브에 널려 있단다. 술잔을 들다말고 역시 재택음주 중일 술친구에게 톡을 보낸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는 두어야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히기 위해서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