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충이 암컷.

 


이놈은 이름만 보아도 영리하지 못하고 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사실 생긴 모양과 하는 행동을 보면 민충이에 조금도 틀림이 없다.

몸은 말할 수 없이 뚱뚱해 돼지같이 미련하게 생겼고 걸어 다니는 모양도 어기적어기적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이놈이 어느 날 하늘에나 올라가서 좀 놀다 내려오겠다는 생각을 내고 쑥대를 벌렁벌렁 기어 올라가다가 겨우 중간쯤 올라가서 하는 말이 "과연 하늘이 높기도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니 참말 민충이에 틀림이 없다. - 조복성 <곤충 이야기>

한국산 여치과 곤충 중 가장 크고 북한에만 산다는 민충이, 녀석에 대한 궁금증과 만나보고 싶은 열망은 메뚜기 연구를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간절했다.

조복성 교수가 몸담았던 고려대학교 표본실에 단서가 남아있을까? 1993년 한국곤충연구소 메뚜기목 소장 표본을 정리한 논문에 민충이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북 출신인 조복성 교수가 민충이에 대해 남긴 글과 그림은 그가 직접 민충이를 채집해 보고 잘 알았다는 것을 뒷받침하지만, 표본은 없었다. 고려대학교는 필자의 대학원생 시절 연구실과 가까워 들릴 때마다 표본 상자를 일일이 끄집어내 살펴보곤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북한 출신의 故 이승모 선생(함평곤충연구소)은 분명 민충이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이승모 선생은 어린 시절 고향인 평양 대동강변에서 민충이를 직접 잡아보았다고 했다.
그렇게 희귀종은 아니지만, 북한에서도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 서식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보기 어렵다, 만약 남한에서 본다면 황해도와 가까운 인천 앞바다 섬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조언했다.
마침 백령도 조사를 하게 되어 민충이가 출현할 계절에 유사한 서식 환경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북한산 표본이 많이 보관된 헝가리 자연사박물관에는 과연 민충이가 있을까? 세 차례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민충이 표본을 확인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11년에야 일본 홋카이도 대학에 방문한 국립생물자원관 곤충연구팀이 찍어온 한반도산 표본 중에서 마침내 민충이 암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민충이에 대한 남한 기록은 전부 잘못된 동정으로 실체를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크고 뚱뚱한 스타일의 여치나 메뚜기에 민충이라는 종명을 엉뚱하게 갖다 붙인 것이다(심지어 제주도 기록도 있다!). 민충이는 한국산 여치과 종 중에 유일하게 더듬이가 겹눈 아래에 붙어 있으며, 독특한 상자 모양의 앞가슴등판과 짧은 날개로 구별할 수 있다.

한반도의 과거 역사를 증명할 소중한 표본들이 한국에 없고 타국에 나가 있는 현실에서 에둘러서라도 민충이를 살펴볼 기회가 생겨 행운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것이 민충이가 선호하는 저지대 강변이나 건조한 황무지 같은 서식처는 사람에 의한 훼손을 겪기 쉬운 곳이라는 것이다(인천에서 민충이를 보았다면 언제든지 제보 바랍니다.)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환경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