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을 맞닥뜨린 순간이 있다. 역사적, 문화적 보물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닌 무서움이라고 해야 할까. 독일의 한 미술관, 이집트의 피라미드 일부가 건물 안에 놓여 있다. 조각품을 가져왔다기보다는 건물을 아예 통째로 옮겨왔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 건물 안에 또 다른 건물을 만난 순간, 대체 이걸 어떻게 가져왔을까 하는 의문과 동시에 이질적인 땅의 건축물 안에 갇힌 피라미드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서린다. 어쩌다 이 건물은 머나먼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옮겨진 이집트의 역사뿐만 아니라 낯선 땅에 서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이집트의 조각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내 나라를 대변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과도 같이 느껴진다. 위엄 있는 애처로움. 이집트 문명을 유럽 땅에서 만날 때마다 유독 이 감정이 진하게 밀려온다.

그런 애처로움을 길 위에서도 만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심장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돌다 보면 또 다른 종류의 이집트 조각을 마주치게 된다. 광장 위에 우뚝,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가 이국 땅에 옮겨져 있다. 로마 사람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려고 가져온 것일까? 이집트와 문화 교류라도 한 것일까? 한때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은 엄청난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전쟁의 승리를 증명하기 위해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자국민들이 모두 볼 수 있는 로마의 앞마당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했다. 그 앞마당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교차하는 광장에 있었다. 그러므로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은 단순한 오브제라고 볼 수 없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만들어진 동상 또는 탑은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메시지로 작용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성공한 일, 위대한 유산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을 상기시킬 매개체, 즉 실질적인 오브제가 필요했다. 존재하던 공간을 벗어나 전혀 다른 장소에 놓인 요소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지품이나 한 지역의 유산이 아니었다. 존재와 역사의 흐름에서 분리된 그들은 부의 상징이자 전승의 기념물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당시는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닌 '무엇'이 보이는가가 중요한 시대였다. 결국 말을 타고 있는 승리의 여신 동상과 오벨리스크는 위대한 로마제국의 영원한 승리라는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차이점은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로마 광장이라는 맥락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래 임무를 가지고 이집트 땅에 서있던 오벨리스크는 개종을 해 세례를 받듯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이며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로마의 지도자들은 로마 시민들에게 자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집트인들은 놀랐을 것이다. 왕이 곧 태양, 즉 태양신 숭배의 상징 오벨리스크가 낯선 땅에서 그 왕을 몰락시킨 증거로 쓰이게 된 것을 본다면 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전 세계인이 로마에 선 오벨리스크를 통해 문화와 역사를 읽는다. 독일과 프랑스, 또 이탈리아 박물관 안의 피라미드와 로마 광장 위에 오벨리스크는 단순히 '메이드 인 이집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읽히는 메시지와 보이는 감정이 달라진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그 과정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부여되는 또 다른 장면이 탄생하는 것이다.

유영이 서울대 건축도시이론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