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청량산(인천 연수구)에 갔는데 사람이 많았다. 어림잡아 전 주보다 4배 이상 돼 보였다. 날씨가 좋았는 데다 봄을 알리는 첫 주말이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는 상황을 감안할 때 뜻밖이었다. 마스크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전날 저녁 모처럼 인터넷바둑을 두기 위해 PC방을 찾았다가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구청의 권고로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을 때의 밋밋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정상에 도달하니 칡즙과 음료수를 파는 아저씨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추워서 몇달, 코로나 때문에 몇달 쉬다가 4개월만에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눈여겨보니 칡즙을 담아 팔았던 종이컵이 여름 못지않게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 높이는 그날의 매상을 의미한다. "사람이 많았나 보죠"라고 물으니 "글쎄 기대를 안했는데 의외로 많다. 애들 개학이 연기돼서 그런가"라고 말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 일행이 몇몇 눈에 띄었다. 동네산이라 그런지 지인도 두 명 만났다. 한 사람은 만날 때마다 먼저 악수를 청하는 스타일인데 그날은 손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어색하긴 해도 최소한 산 만큼은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사람과 밀착되지 않고도 취미를 이어갈 수 있는, 산이라는 공간이 갖는 특성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집에 가니 인근 공원에 다녀왔다는 집사람도 "날이 좋아 그런지 사람이 많더라"고 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이날(토요일)은 낮 최고 기온이 12도까지 오르는 따뜻한 날씨였지만 나들이에 나선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언론의 과장 보도 역시 코로나 못지않게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대구는 짧은 시간의 여유마저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힘내라 대구'가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의료진이 자원해 대구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 충남 태안군 앞바다 대량 기름유출 사고 당시 국민들이 끊임없이 '태안으로' 몰려들었던 장면이 연상된다. 광주시 중학생 7명은 세뱃돈을 모은 100만원을 적십자사로 보냈고, 부산의 한 업체는 1억원어치의 곰탕·갈비탕을 대구에 보냈다.

전염병 공포가 강해도 공동체 유대까지 끊어내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역설적이게도 대구에서, 우리가 빠진 수렁 속에서 희망과 관용, 연대의 힘을 다시 보게 된다. 이종구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와 비관적 생각보다는, 그동안 신종 감염증의 도전을 잘 극복해 왔던 사례를 보면서 '이번에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이 이 싸움에서 이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