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노현 후지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사카에 마을. 몇년 전, 지역경제가 잘 돌아가는 일본의 도시와 농촌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들른 곳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면 정도 규모의 지역으로 인구 약 3000명의 작고 촌스러운 산동네 마을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초라함(?) 이면에는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발전의 '화려한' 성과가 자리잡고 있다. 해서, 이곳은 전 세계의 도시와 지역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특별한 곳으로, 특히 토목형 도시개발이나 대기업 유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역의 생산과 소비 간의 매칭, 지역의 자금 공급과 수요 간의 매칭, 그리고 지역 기업의 투자 및 생산이 그 지역의 여타 기업으로부터의 조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지향하는, 즉 지역 '내발적 발전'을 추구하는 각국의 도시 행정가와 시민 실천가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역경제의 완결적인 발전을 이룩해온 이 마을만의 획기적인 노하우는 바로 '실천적 주민자치'와 위에서 언급한 '내부 순환형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철저한 지역주민운동을 토대로 하고 있다. 소규모 지역운동을 표방하는 일본의 진보진영 청년 운동가들이 오랫동안 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부의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그 지역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사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유하고, 또 이 지역 주민들의 경제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운동을 전개해왔다. 이와 같은, 이 지역만의 시민교육의 영향으로, 이 마을의 식당이나 대폿집을 가면 '지산지소(地産地消)', 즉 우리 마을에서 우리 원재료로 만든 물건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소비해 결국 고용도 창출하고 또 소득도 올리자는 의미의 문구가 한결같이 벽에 적혀 있을 정도다.

이곳 사카에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역의 여러 자원들을 공공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중시하는 제3섹터가 여러 부문에 걸친 지역 내 전체 생산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조직화'하고 있고, 또 그러한 생산에 대한 수요와 소비를 지역 내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지역에서 시민 대표성을 갖는 조직이 그 지역의 생산이 지역의 수요에 정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또 지역의 소비는 지역의 생산에 매칭될 수 있도록 주민운동 차원에서 관여한다는 것. 재단법인 사카에진흥공사(공기업)와 유한회사 사카에물산센터(민간기업), 그리고 그 지역 주민들(시민사회)이 함께 만든 이 제3섹터는 이 마을의 지자체, 농협 및 삼림조합 등의 금융기관, 지역 상공회의소 등이 공동 출자해 관광사업, 도시와의 교류, 특산물 개발, 식당 경영 등의 영역에서 수익보다는 주민 생활을 향상시키는 공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또 이를 현실화하는, 즉 마을경제 전체를 총괄하는 시민적 조정기구다. 물론 이 마을의 생산조직, 마을만들기 조직, 각종 조합, 또 연령과 계층을 대표하는 주민들이 직접 공동으로 경영하는 민주적 조정기구다.

이 기구는 마을 내 농공산품 생산조합을 조직해 그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를 토대로 대도시의 소비자 협동조합에 대해 농산물뿐만 아니라 지역의 전통 공예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기구가 마을에서 생산하는 모든 상품을 마진 없이 전량 구매해 그 판매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제3섹터가 조달한 부가가치의 70%가 이 마을에 환류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 이 기구는 지자체와의 강도 높은 과학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마을 내 산업연관을 고려한 순환형 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공동수주와 공동소비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으로 이 마을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조직화돼, 결국 이들은 지역 내 순환형 경제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의식화된' 주민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창출되는 모든 일자리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되며, 또 그 수익은 지역의 환경과 전통 자산을 보호하고 지역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재투자되고 있다.

사카에 마을. 이곳은, 철저한 지역주민 주권에 의거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시민적 기구가 지역경제를 주도적으로 조정하고 또 통제할 때, 요원해 보이기만 하는 자기완결적 '지역 순환형 경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의 발신처임에 틀림없다. 특히 돈, 사람, 수요가 서울로 다 새버리기 십상인 우리 인천에게 주는 메시지는 더욱 심장하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