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몇개 보고 그서체 술술 '심은 전정우'
20년 전 모교 폐교 안타까워 미술관 건립
거북이 등딱지 상형문자 ~ 심은서체 보유
문학산 바위·송도 경원재 간판도 그 솜씨
40억 투입 '천자문 문화관' 설립 추진 중
▲ 심은 전정우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 2000년 폐교된 강화군 강후초등학교에 세운 심은미술관 전경.

 

▲ 심은미술관 소장품들.

 

▲ 심은미술관 소장품들.

 

▲ 심은미술관 소장품들.


인천 강화군 하점면 이강2리 357번지에 있는 40년된 강후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감소해 2000년 폐교했다. 이 학교 1회 졸업생이자 동문회장이던 전정우 작가는 학교가 없어진 현실이 안타까워 그 자리에 미술관을 만들었다. 바로 전 작가의 호를 딴 '심은미술관'이다. 심은미술관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강화에서 20여년 동안 제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름다운 서예 작품과 독보적인 천자문 전시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갑골문자 천자문부터 한석봉 서체 천자문 등 불가사의 작품 수두룩

심은미술관은 전정우 관장의 작품 약 2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심은 작가는 혼서체, 서첩, 문자 추상회화작품, 한글·국한 혼용 작품 등을 작업하는 당대 명성이 높은 서예가다. 문학산 정상 바위에 새겨진 '문학산' 글귀와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한옥호텔 경원재앰배서더의 간판 '경원재'도 그의 솜씨다.

특히 그는 120가지 서체를 가지고 천자문을 일일이 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120개 종류에는 고대 거북이 등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겨져 있던 상형문자와 신라시대 글씨체 등이 포함돼 있다. 전 작가는 아무리 오래되고 정식문자가 아니었다고 해도 몇 개의 글자 일부만 보면 뭐든지 천자문에 응용해 하늘천(天)부터 이끼야(也)까지 천개의 글자로 탄생시킨다.

'심은서체'라는 그만이 알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글자체를 창조해내기도 했다.
그가 천자문으로 활용한 것은 120개 서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서체를 6가지 크기별로 써냈다. 지금까지 총 720가지 천자문이 현존하는 셈이다. 방대한 작업분량 뿐 아니라 그의 손에서 되살아난 글씨가 하도 진귀해 현실의 글자라는 것이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미술관에는 이 천자문들 중 몇 가지가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글자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한국화, 서양화, 서예, 도예, 조각 등도 소장하고 있다.

심은미술관은 폐교를 활용한 공간인 만큼 옛 초등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교정과 교실내부 등을 통해 지금은 없어진 40년 전통의 학교 정취를 느낄 수도 있다.

 



#심은미술관을 천자문 문화관으로, 폐교시설 문화재생사업 추진

현재 심은미술관을 둘러싸고 국비와 인천시·강화군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정우 작가의 작품들의 가치와 폐교 터에 세워진 특징 등을 두루 감안해 '폐교시설 문화재생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시는 국비 20억원, 시와 강화군 20억원 등을 투입해 미술관 자리에 천자문 문화관을 설립하고 전 작가의 콘텐츠로 채우는 한편 신개념 한류문화로 강화 관광객 유입을 노릴 예정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 인천시교육청 소유인 학교 부지와 건물을 인천시가 지난해 매입한 바 있다.
시와 강화군은 심은미술관측과 협의를 거쳐 이르면 올해 6월 첫 삽을 뜨고 내년 12월 준공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최근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품 소유 방식을 두고 강화군과 전정우 작가 사이 이견이 생겼다.

120서체로 쓴 천자문 한 벌을 문화관에 무상 기증하는데는 서로 합의가 됐으나 나머지 600점에 대한 부분이 문제다. 군은 나머지 전체를 군에게 영구·무상 임대해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작가는 필요할 때 마다 빌려주겠다는 것으로 의견 차이를 보였다.

강화군으로서는 한 벌 만으로 전시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니 여유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두고자 하는 배경이 있다. 또 공적자금을 투입해 한 개인의 작품에 대한 사업을 벌이는 만큼, 그 정도의 지분도 갖겠다는 심산이다.

전정우 작가는 군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영구무상임대에 동의할 경우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해 제때 권리 행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혼을 다해 작업한 작품 중 이미 큰 부분을 무상 기증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요구는 과도하다는 생각이다.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전정우 작가는 작품들을 들고 강화를 떠날 최악의 순간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검여(유희강)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닌지 우려되는 맥락이다.

강화군 관계자는 "군도 대의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며 "끝내 협상이 결렬 된다면 그때가서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심은 전정우 서예가

"글자 몇개만 봐도 그 시절이 상상이 되요. 그리고는 저절로 써지는 거죠."

백제 무령왕릉에 지석 뒷면에 새겨진 간지도(干支圖)가 전정우(사진) 선생의 손을 거쳐 천개의 글자로 탄생하는 순간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적용하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해 완성된 120개의 서체, 그는 이것을 완전히 가지고 논다. 어떤 천자는 꼿꼿한 장수처럼 거세고 절도있으면서 다른 천자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유려하다. 마치 컬트에서 코미디, 로맨스로 장르를 넘나 들 듯 각각의 천자문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붓글씨로 영어도 쓴다.

"하루 15시간 작업을 할 때도 있어요. 하늘천에서 시작하는 천자문은 하나의 우주와도 같죠."

강화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가 경기공고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당시 이병철 회장 비서실에 특채된 이력이 있다. 서예는 어렸을 때부터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2학년때 미술교사의 추천으로 전국학생 휘호대회에 나가 입상한 것을 계기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동아미술제 미술상 등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200여회에 걸쳐 국내외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한 그는 70대에 접어든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작품 세계가 깊어지고 힘도 나요. 더 좋은 글씨,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네요."

이런 그가 요즘 천자문 문화관 추진과 관련해 시름이 깊다. "내 고장 강화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지만 예술가가 응당 가져야 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권리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공동기획 인천일보·인천광역시박물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