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황새기젓 같은 꽃을 다오
곤쟁이젓 같은, 꼴뚜기젓 같은
사랑을 다오
젊음은 필요 없으니
어둠 속의 늙은이 뼈다귀빛
꿈을 다오
그해 그대 찾아 헤맸던
산 밑 기운 마을
뻐꾸기 울음 같은 길
다시는 마음 찢으며 가지 않으리
내게 다만 한 마리 황폐한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나서부터 세상이 달라졌다. 거리에는 웃음을 잃은 사람들, 우리의 꿈도 희망도 다 사라진 느낌이다. 음압병실, 폐섬유화, 텅 빈 상가, 가면이 흘러 다니는 거리, 자막에 뜨는 사망자 숫자들… 이런 그로테스크한 풍경들이 패닉을 넘어 대인관계 기피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서글픔을 감추기 어렵다. 마치 재난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몇 번의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유난히 공포감을 깊숙이 심어놓고 있는 것 같다. 치료할 약이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감춰져있던 치열한 생존본능을 절망적으로 자극한다. 이것이 한 편의 영화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리련만, 엄연한 현실이라는 데 우리는 경악한다.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원래 우리의 희망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의 늙은이 뼈다귀빛 꿈' 정도의 소박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냥 가로수 아래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거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 악수하고 한 끼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소소한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선뜻 손을 맞잡지 못하는 일은 당분간 길게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황새기젓' 같은, '곤쟁이젓' 같은 희망의 숙성된 냄새가 간절히 그리워도, '뻐꾸기 울음 같은 길'이나마 산길을 걸어 그대를 찾아가는 통로는 지금 다 막혀 있다.

그러나 인간의 힘은 그리 나약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천 년의 고난을 극복하고 이룬 오늘의 이타적 인간 지형은 그리 쉽게 무너질 성곽이 아니다. 현대인의 삶 그 중심에 사랑과 공존이라는 튼튼한 주춧돌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에 나는 안도한다. '꼴뚜기젓' 같은 끈끈한 그것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게 하고, 우리는 또 그렇게 무너졌다가도 빛나는 삶의 꽃을 언제나 환하게 다시 피워 올렸다. 그렇다,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저 하늘에서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시 '희망'에서 노래한 '한 마리 황폐한 시간이 흘린 눈물'을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권영준 시인·인천 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