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에서 세종과 장영실은 조선만의 절기를 활용해 역법을 만드는 일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명나라가 자신들의 절기 이외에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아서다. 장영실이 만든 천문기기들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것을 봐야했던 당시 조선은 사대주의를 기저에 두고 형성된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아프리카 모리셔스에 방문한 한국인들은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입국을 거부당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수백명 발생했기 때문에 가차없이 문을 잠근거다.

10시간 넘는 비행끝에 도달한 목적지에서 바이러스 취급을 당한 후 다시 황망한 귀국편에 올라야 했던 그들의 심정을 짐작해봤다.

이것이야말로 타국민에게서 옮겨 올 감염의 가능성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즉각적이고도 상식적인 국가의 행동이구나 하며 체감했으리라. 이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는?'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을테다.
우리나라의 중국인 입국금지는 지난해 12월 중국 코로나19가 발발하자마자 곧장 요구됐다.

국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간청했고 의사 집단은 협회를 통해 6차례나 권고했다.
하루에 수백명 수천명이 확진판정을 받고 도시 전체가 봉쇄된 이후에도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전염의 속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개발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우선 중국인 출입을 금지하고 보자는 방법은 가장 효과적이면서 명징했다.

물론 두 나라의 경제적·외교적 관계나 당장의 물질적 손해와 관련해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겠으나 이번 사안은 나라가 통째로 죽고 사는 역병의 문제였다. 이보다 더 우선할 수 있는 가치나 셈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끝내 병의 근원지인 중국을 막지 않았다. "창문 열고 모기잡느냐"는 비판엔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고 농을 했다.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한 날 대통령은 기생충팀과 짜파구리를 나눠 먹는 동영상을 올렸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선 확진자 1000명을 넘어섰으며 11명이 죽었다. 학교, 회사, 병원, 은행, 국회가 문을 닫고 사회 경제 문화 할 것없이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이 멈췄다.

그래도 정부는 중국인 입국금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진핑과 통화하며 그의 방한일정을 확인하고 임상치료 경험을 공유하자고 손을 내민다.
반면 중국은 한국서 왔다는 이유로 우리 국민을 강제 격리하고 박대했다. 조만간 되레 중국이 한국인 입국금지를 한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되면 중국에 종속됐던 500년전으로 돌아간건 아닌지 헷갈린다. 일개 사신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영화 속 한석규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장지혜 문체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