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면서, 국내 언론매체에서 며칠 동안 관련 뉴스와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탄 것도 최초였다. 게다가 첫 수상을 4관왕으로 장식했으니, 실로 놀라운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생충>의 놀라운 성적은 '한국 영화의 쾌거'로 해석되었고, 며칠 전에는 대통령이 제작진과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함께 오찬을 가지며 그 성과를 치하하기도 했다. 최근에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매체에서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 단계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증거처럼 취급되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치밀함과 열정에 대한 찬사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관왕을 달성하고 귀국한 스포츠 영웅을 대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데 과연 <기생충>의 성취를 '한국 영화사의 쾌거'로 이해해도 좋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한국인 감독과 제작사, 배우, 제작진, 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니 '한국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기생충>이 곧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데에 있다. 지금처럼 세계의 문화적 장벽이 허물어진 시대에 굳이 영화에 국적을 갖다 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특히, 국제영화제는 국가대항전인 올림픽이나 월드컵과는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또한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어쨌든 선수들이 한 국가의 대표로서 출전해 실력을 겨루는 대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이 각국을 대표하는 영화들이 경합하는 장소는 아니지 않은가. <기생충>의 놀라운 성취는 그냥 <기생충>이라는 영화 한 편의 성취이며, 감독과 출연진, 제작진의 성취로만 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양국의 무역 문제를 가지고 <기생충> 수상을 비판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혹시나 해서 밝히자면, 필자는 봉준호 감독의 팬이다. 그의 영화는 장편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부터 나올 때마다 극장에 달려가서 관람해왔다. <옥자>를 보기 위해서는 넷플릭스에도 가입했다. 다만,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사실상 '로컬 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것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너무 과잉반응을 하는 것은 아닐까. <기생충>에 국적과 국가대표 자격을 부여해 불필요하게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한편, 이러한 현상은 반대로 서구 사회(특히 미국)의 인정을 갈망하는 문화 사대주의의 현상으로도 읽힐 수 있다. 아카데미의 인정이 그렇게 중요한가? 오스카상을 받은 작품이 반드시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을 받은 작품보다 좋은 작품인가? 영화를 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필자는 국제영화제 수상 실적은 없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더 좋아한다. <기생충>의 수상 소식에 한국 영화의 발전 운운하며 호들갑 떨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기생충>의 수상 소식과 함께 봉준호 감독의 멋진 수상소감도 화제다. 특히 필자는 1인치의 장벽(자막)은 이미 많이 허물어졌다고 한 그의 말이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그 장벽을 더 허물어야 한다고 미국 영화계에 일침을 가한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1인치'에서 민족적·국가적 자긍심을 찾으려는 한국 사회에도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봉준호 감독은 그런 뜻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겠지만.

국제영화제는 국가대표 대항전이 아니다. 영화에 무슨 국적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생충>의 훌륭한 성과에 박수를 보내고 축하해줘야 하겠지만, 마치 <기생충>이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것인 양, 한껏 치켜세워 불필요하게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기생충>과 같은 훌륭한 작품이 나올 때 여전히 극장에는 여기서 제목을 밝힐 수 없는 졸작 한국 영화들도 성황리에 상영 중이니까.

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