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천성마을 '행복학습관'과 인연
양정화 작가와 한글·시 등 교육 열정
일곱 할머니들, 시집 발간 결실 맺어
▲ 염일열 교수가 할머니들과 함께 만든 시집 '늙은 책가방'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칠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시집을 냈다. 늦은 시기에 연필을 잡고 10년이 넘도록 공부한 끝에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다. 늦깎이 시인은 김예동(93), 이덕조(88), 임봉남(80), 백만금(77), 오문자(77), 윤춘애(67), 여애은(63) 등 7명이다.

이들이 시인으로 등단할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서정대학교 염일열(52·사회복지행정과) 교수다. 염 교수는 2010년부터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었다. 천성마을에 행복학습관이 문을 열면서다.

이곳은 한센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으로 사회의 편견 속에 교육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이에 양주시는 동네 슈퍼였던 곳을 리모델링해 교육의 장소로 바꿨다. 작은 학교로 일컫는 행복학습관은 서정대 산학협력단이 위탁받아 운영했다.

교육의 중심엔 염 교수가 있었고, 양정화 작가가 도움을 줬다.

하지만 배움의 시기를 놓친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평생 일만 하고 살아왔다. 심지어 어릴 적부터 환경적으로 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염 교수는 할머니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한글 대신 그림그리기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렸다.

교육생도 70명으로 늘면서 행복학습관은 교육의 열기로 가득했다. 할머니들은 굵은 마디의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교육과목도 늘었다. 그림으로 시작해 한글, 노래, 한자 등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평생 한으로 안고 살아 온 할머니들은 어느 순간부터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다. 한자 자격증 시험에 도전해 7급까지 취득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양정화 작가가 할머니들에게 시를 쓰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배운 것도 없는 우리가 시를 어떻게 써?"라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양 작가는 비슷한 삶을 산 분들이 펴낸 시집을 할머니들에게 건네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때부터 할머니들은 머리를 잡고 끙끙 앓으면서 시를 썼다.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다. 자신감이 생긴 할머니들은 시뿐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12월 7명의 늦깎이 할머니들은 평생 꿈조차 꾸지 못했던 시집 '늙은 책가방'을 출간했다. 시집에는 어린 시절 고향을 기억하고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척, 친구,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살아왔던 환경과 자연을 느끼는 감정까지 모두 담았다.

시집을 손에 쥔 김예동 할머니는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한 글자씩 배웠더니 신기하게 눈을 떴다"라면서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희망이 생겼다"라고 흐뭇해했다.

염 교수는 "시작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워 시집까지 냈으니 얼마나 행복하시겠어요"라며 "한글을 깨우친 어르신들이 짧게는 60년, 길게는 90년 이상 살아오면서 마음에 품었던 서러움과 응어리를 풀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양주=이광덕 기자 kd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