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비디오 테이프를 보려면 먼저 봐야 하는 게 있었다. '예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가 가장 무서운 …'으로 시작하는 그 공익광고다. 그 이름이 몇차례나 바뀐 코로나19 감염병에도 '우한 마마'라는 별칭이 보태졌다. 코로나19의 불안감이나 사회적 파장은 그 이전 감염병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떠도는 크루즈' 사태도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다. 언론이 존재해야 할 가치를 새삼 일깨워 준 것도 코로나19의 한 현상이다.

▶크루즈는 '떠돌아다니다' '어슬렁거리다'라는 뜻에 어원을 둔다. 16~18세기 대서양 바다에는 허가를 받아 적국의 상선을 약탈할 수 있는 민간 무장선(사략선, 私掠船)들이 설치고 다녔다. 영국, 네덜란드 등의 사략선들은 공인 해적질을 할 대상을 찾느라 온 바다를 어슬렁거렸다고 한다. 이런 크루즈가 20세기 들어 세계 여행의 로망이 됐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크루즈인지라 '바다 위 호화 리조트'라고도 불린다. 선상 신문까지 발행된다. 요즘 막 은퇴한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도 크루즈 여행에 곧잘 나선다고 한다. 그런데 일만 하느라 사교댄스 등 즐길 거리에 어두워 '크루즈에서 술만 퍼마신다'는 얘기도 들린다. 항구도시들마다 크루즈 유치에 목을 매는 시대다. 전용부두가 없던 시절 인천에서도, 북항의 원목야적장에서 크루즈 환영 행사를 벌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런 크루즈가 이제는 받아줄 항구가 없어 바다를 떠돌고 있다. 코로나19가 무서워 항구마다 입항을 사절해서다. 지난 주말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가 가까스로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항에 입항해 승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2200여 승객·승무원들은 그간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 괌 등에서 잇따라 입항을 거부당해 왔다. 일본 요코하마 항에 고립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코로나19의 온상처럼 됐다. 3700여명 탑승자 중 17일 현재만도 확진자가 이미 350명을 넘어섰다. 다음 기항지로 떠나지도, 그렇다고 육지에 내리지도 못하는 신세의 크루즈가 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를 일본과는 무관한 것으로 덮으려만 들었다. 올해 도쿄올림픽의 성공에 걸림돌이 될까봐서다. 일본 언론도 빗나간 애국심으로 입을 다물다시피 했다. 중국도 초기의 감염병 경보음들을 체포해 침묵시켜 버렸다. 서기장 나리의 출세길을 염려했을 것이다. 이런 엉뚱한 노력들이 화를 키워간 것이다.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소리치는 언론을 겁박하면 감당할 수 없는 후환으로 돌아온다. 덮으려만 들면 안으로 곪아 터지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