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으로] 펀드 폭망 장학재단과 군포사랑장학회
[뉴스 속으로] 펀드 폭망 장학재단과 군포사랑장학회
  • 전남식
  • 승인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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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내 특정 자치단체가 기금을 출연해 설립한 장학재단의 이사장이 기금을 불법으로 펀드에 투자했다가 형사처벌과 함께 변제 판결을 받았음에도 손실금을 변제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이사장은 2005년에 이사회와 관할 교육청 허가 없이 20여 억원을 시중 은행상품에 투자했다가 원금의 절반에 가까운 9억여원의 손실을 냈다. 이 사실은 2008년 이사장 교체와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드러났다. 더욱이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자를 포함해 6억여원의 판결금을 변제하지 않아 재단측이 골머리를 앓고있다는 전언이다. '가진 재산이 한 푼도 없다'는 게 이유다.

소식이 알려지자 해당 사건이 벌어진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군포사랑장학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지낸 김병두 대일그룹 회장의 과거 행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군포사랑장학재단은 2007년 4월 설립 전부터 재단의 설립 및 운영방식을 놓고 군포시와 군포시의회 간 이견으로 제동이 걸렸다. '재단법인 군포사랑장학회 설립 및 운영조례안'이 의회에서 재차 부결되는 등 갈등을 겪었다. 진통끝에 2006년 말 조례안이 가까스로 통과돼 이듬해 재단이 발족됐다. 시작부터 난관이 예고됐다.

김 전 이사장은 당시 노재영 군포시장의 수차에 걸친 천거에도 고사를 고집하다 결국 이사장 자리를 수락했다. 향후 운영에 있어 요구했던 인재육성이라는 사업목적과 정치성향 배제라는 필요·충분조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정치인이나 관료출신도 아닌데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가로서 그의 결단은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으로 설명된다. 모두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남극의 펭귄 한 마리가 앞장서 바다에 뛰어내리듯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전과 변화를 선택한 리더다.

당시 시장 측근의 낙하산설이 돌던 사무국장 선임문제나 특정 은행에 한정된 기금 예치문제 등이 뜨거운 감자였다. 사실상 무보수로 돼 있던 사무국장의 생활비와 행사경비 사비지원에 이사장 활동비 반납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특히 4년에 연임까지 보장된 임기를 대폭 앞당겨 취임 2년도 안돼 16개월만인 2008년 말 자리에서 물러났다. 감투에 연연해선 안된다는 평소 소신이 반영됐다.

그는 취임 직후 이미 물러날 때를 염두에 두고 임기를 '2년으로 하되 3회 연임할 수 있다'고 정관을 뜯어고쳤다. 이유는 명료했다.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해서다. 명예보다 능력있는 다양한 인사들이 운영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자기희생 논리에 기인한다. 취임때는 수천만원의 기부를 솔선했다. 그의 수범으로 지인은 물론 기업, 기관 등이 10억원 가량을 선뜻 출연했다. 20억원의 재단창립 예산에 임기동안 시 출연금과 기부금을 포함 65억원 이상의 재정 기반을 다졌다. 현재 116억 여원의 재단으로 성장했다. 이런 성과가 있기까지 군포시는 물론 이명근 현 이사장을 비롯 역대 이사장들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전 이사장은 임기 말에도 수천만원을 장학기금으로 쾌척했다. 떠나는 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조용한 기부는 아름다운 퇴장을 더욱 빛나게 했다. 존경받는 이유도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베풂의 크기에 있었다. 김 전 이사장은 왕성한 기업가이자 재단의 영원한 후원자로 남아 있다. 그의 내심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 실천해야 할 일은 사회에 대한 끝없는 봉사와 기부행위'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전남식 경기중부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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