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통해 알게 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과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학정보가 주는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바꿔 놓은 지도 한 달여가 지났다. 지난달 19일에 국내에서 확인된 첫 감염환자는 중국인이며 그는 인천의료원으로 이송되어 격리병상에서 치료를 시작했다는 뉴스와 그 환자가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면서 "의료진과 한국정부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고 이후 그가 보낸 편지 내용 "당신들의 친절함과 세심한 간호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치료해주는 사람에게 어진 마음이 있다는 뜻의 '의자인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게는 당신들은 그 이상이며 제 영웅입니다."가 밝혀져 인천의료원의 의료진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았나 싶다.

반면,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우리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순간에도 국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특위'를 합의하고도 특위 이름에 '우한'이라는 명칭을 넣을지 말지를 놓고 여야가 싸움질이다. 여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특정 지역이나 인종을 뜻하는 단어를 병명에 넣지 말라는 권장사항을 따르자는 의견에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본다고 비난하며 특위 구성이 늦어지고 있다. 아마도 10년쯤 지나면 개그콘서트 재료로 안성맞춤이 될 것이다.

이번 감염병 사태는 중국이 초기 대응을 잘못해서 확산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감영병 확산의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던 우한중심병원 안과과장 리원량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가 공안으로 불려가 훈계서에 서명을 했고 "허위 정보를 퍼트려 민심을 불안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됐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시진핑의 실각설이 나돌 만큼 중국이 어렵다. 미국과의 기나긴 무역전쟁 끝에 간신히 합의로 휴전 상태로 막아 놓았지만 이번 사태로 미·중간 1단계 무역합의에도 변화가 감지되지만 미국은 '코로나-19'와는 무관하다고 하니 중국은 엎친데 덮친 격이다.

이런 와중에 일부 국민들은 청와대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요청하는 청원을 게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극도의 불안에 빠진 일부는 중국인에 대한 기피를 넘어 접촉을 꺼리는 것은 물론 출입을 막은 상점도 등장했고 지나는 중국인을 폭행하는 중국인 혐오가 극에 달했다. 사드 사태로 사라졌던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막 회생하고 시진핑의 3~4월 방한 계획이 잡혀있었던 터라 매우 아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은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아 국민의 인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을 더 큰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필자는 무역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고 중국과 그리고 동남아 국가의 화교들과도 많은 거래를 했다. 90년대 초반 전체 인구의 약 75%가 화교로 이뤄진 싱가포르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제법 큰 규모로 제조와 무역을 겸하는 화교상과 거래는 물론 개인적으로 친구가 돼서 그가 자랑하는 싱가포르대학 동창회관에 초대를 받아 그와 그의 동문들과 자리를 함께 하곤 했다. 그 자리에서 중국인들의 상술(商術), 상도(商道), 그리고 '관시(인간 간의 관계)'에 관한 그들의 여러 에피소드와 생각을 듣고 배우며 '중국인들은 신의(信義)를 가장 중시한다'는 결론에 이를 즈음에 나는 "그럼 신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고 질문을 던졌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중국인 6명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같은 대답을 했다. "당신이 건너온 다리를 끊지 마라!"
2012년 메르스로 온 나라가 패닉 상태일 때 메르스에 비교적 안전했던 중국은 한국인 입국금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사드를 배치하자 쌀쌀하게 돌아섰던 중국이 우리의 오랜 노력에 이제 막 마음을 열 참이다. 그런데 그들은 결코 자신들과 관계된 과거 일을 잊지 않으며 그들은 자신이 어려울 때 상대가 어떻게 했는가를 기억하는 유전자가 특별한 사람들이며 신의를 중시하는 민족이다. 우리는 미래도 함께 고려하는 실용적 정책은 물론 그 이전에 성숙한 사람이라면 역지사지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중국눈치 보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외교색깔론'은 억지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를 두고 중국과의 통하는 다리가 없는 우주로 이사갈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은 내일의 '건너온 다리'이지 않는가?

 

정세일 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