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4일 소련 배가 인천항에 닻을 내렸다. '미하일 솔로호프호'(1만2798t급)로, 개항(1883년) 이래 소련 여객선으론 처음 입항했다. 서울올림픽 개막(9월17일)에 앞서 소련 선수단 건강관리와 휴식 등을 위해 온 '병원선'이었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32일 동안 인천항에 머물렀다. 이 배는 식당·병원·수영장·오락실 등의 시설을 갖췄다. 그 때는 아직 동서냉전 먹구름이 채 걷히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솔로호프호는 수많은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세월은 유수(流水)라고 했나. 이젠 솔로호프호 내인(來仁)처럼 떠들썩하던 시절은 아니다. 냉전은 사라지고 우리와 러시아는 30년 전 수교를 맺어 화합을 다진다.

사실 인천 앞바다는 구한말 제국주의 패권 다툼의 각축장이었다. 제물포해전도 그 싸움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일본 해군은 1904년 2월9일 러시아 군함에 제물포항(인천항)을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호와 포함 코레예츠호는 중국 뤼순항으로 가려고 항구를 나섰다. 그런데 이들 배가 팔미도 해상에 이른 순간, 10여대의 일본 군함이 불을 뿜었다. 일본의 무력 앞에 러시아 함대는 곧 무너졌다. 러시아 수병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자폭으로 침몰을 선택한다. 바로 만주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벌인 러일전쟁의 시발점이다. 두 강대국이 패권을 차지하려고 우리 땅에서 일으킨 아픈 전쟁의 역사다.

이렇게 제물포해전에서 숨진 러시아 수병을 기리는 추모는 오늘날도 계속된다.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군인과 시민들은 해마다 블라디보스토크 해양묘지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행사를 연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맞았으니 오죽하랴. 러시아는 러일전쟁 발발 100주년인 2004년 2월8일 바랴크호와 코레예츠호 전사자 추모비를 인천 연안부두에 세우기도 했다. 2014년 11월엔 인천시립박물관이 보관하다 러시아에 빌려줬던 바랴크호 깃발이 다시 인천에 돌아왔다. 일본이 이 깃발을 수거했다가 광복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됐다. 바랴크함은 러시아 국민들에겐 국가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상징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강조하며 깃발이 도착할 즈음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펼쳤다.

이래저래 러시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인천시가 올해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각계와 갖가지 협의를 벌인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러시아가 제물포해전을 잊지 않듯, 우리도 과거를 넘어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터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경구를 되새겨야 한다. 나라가 힘을 갖고 나서야 평화를 운운할 수 있지 않은가.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