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등뼈가 골절돼 종합병원에 5주간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한창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기승을 부릴 때라 간호사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의사 몇몇은 착용하지 않았다. 담당의사도 그 중 한 명이였는데, 왠지 불안보다는 신뢰가 느껴졌다. "메르스 무서운 거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의도가 담긴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시 대학생이었던 딸의 생각은 달랐던 것으로 기억돼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물어봤더니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마스크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자 성의야. 더 중요한 건 내가 병에 걸렸더라도 가족과 주변에 옮기지 않겠다는 배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마스크 안쓴 의료진에게 신뢰 느꼈다고 하면 엄청 욕먹을 것".

지난 주말 동네산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마스크를 쓴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불쑥 "다른 사람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라고 말했다. 그제 들린 약국은 약사 3명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신뢰'나 '배려' 이전에 약사의 의학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과 신뢰가 무엇보다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있다. 아무리 의료과학이 발달했어도 심리적 요인이 그 위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마음상태를 잘 헤아리고 안정을 주는 의사가 '명의'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신경정신과 의사는 유달리 친절하고 환자의 말을 경청한다고 한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도 신경정신과 병동이 거의 유일하다. 금연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흡연보다 나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후 마스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역대 최고급이다. 약국에 마스크가 동이 나고 가격이 폭등했다느니, 인천공항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느니, 중국인 관광객이 싹쓸이했다느니. 바이러스에 관한 다양한 설 만큼이나 말이 많다.

조경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 200만개를 지원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 '중국 바라기'(중국+해바라기)"라고 비판한 뒤 여·야 간에 마스크 지원분량을 놓고 쓸데없는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스크가 국가 현안으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급기야 정부는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면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된다고 발표했지만, 중국의 조치에 비하면 경범죄 수준이다. 중국 헤이룽장성 인민법원은 가짜 마스크를 제조·판매하거나 집단방역용 마스크를 빼돌리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고 공표했다. 마스크가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