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정착 걸림돌 유엔사 해체 검토해야"
▲ 지난 6일 오후 개최된 제 160차 생명평화포럼에서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유엔사의 법적 문제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제 160차 생명평화포럼 강연회 초청 특강에 참석한 회원들이 강연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6·25전쟁 발발 3년 뒤인 1953년 7월 27일, 전쟁 당사자인 유엔군(United Nations Command)과 북한, 중국 등은 전투 중지에 합의하는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을 통해 휴전선 남북 각각 2㎞ 구간을 '군사적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로 설정했다. 6·25전쟁 직후 설립된 유엔군 사령부(유엔사)는 지금까지 70년간 이 곳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영토인데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은 지역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유엔사를 통해 일정한 절차를 밟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에 갈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홍보에 열 올리는 유엔사

최근 유엔사 측은 북한군과의 직통전화와 통화현장 사진을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일엔 '2020 평창평화포럼 참석자 DMZ 방문 승인'을, 5일엔 환경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평가 조사를 위한 출입 승인 사실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유엔사의 행동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과 평화운동 시민단체들은 그리 달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그동안 남북교류를 방해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어깃장을 놓는 훼방꾼 노릇을 조금이라도 숨겨보자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수명이 다한 유엔사를 해체하고, 정전협정 서명당사자를 대한민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유엔사의 법적 문제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과제

(사)평화철도, 평화통일시민연대 대표 등을 맡고 있는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국제법 전공)는 지난 6일 인천을 방문해 '유엔사의 법적 문제'에 대한 '특별 강연회'를 가졌다. 이 교수는 이날 오후 부평아트센터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제 160차 생명평화포럼에서 '유엔사의 태동과 법적 성격, 역할 및 한계',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출구전략'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이자 지금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는 이 교수의 특강을 통해 '유엔사의 해체 문제와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 등을 살펴본다.

남북교류협력을 가로 막는 유엔사

로버트 에이브람스 유엔사령관은 지난달 28일 "한국군 장성들이 DMZ를 출입하기 48시간 전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민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유엔사령관의 이 같은 문제제기는 '매우 이례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9년 8월 9일에는 비무장지대 내 민간 거주지역인 '대성동마을'을 찾으려고 했던 김연철 통일부장관 일행이 유엔사의 동행 취재진 방문 불허 통보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해 6월 10일, 독일 경제·에너지 차관이 포함된 독일 대표단의 비무장지대 GP 방문 계획도 유엔사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서호 통일부 차관이 유엔사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정경두 국방장관이 협조요청까지 전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미국 입맛대로 이름 붙여진 유엔사

유엔사의 창설은 1950년 6·25전쟁에서 비롯됐다. 유엔(United Nations)은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18개국에서 파견된 병력으로 통합군 사령부(United Command)를 설치했다. 그런 뒤 사령관 임명을 미국에 위임하고, 유엔의 깃발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그 활동 과정을 안보리에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과 아무런 상의 없이 '통합군 사령부'의 명칭을 지금의 '유엔사'로 바꾸고, 미국군 태평양지역 총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런 미국의 일방적 행동 아래 7월 24일 일본 동경에서 유엔사의 활동이 시작됐다.

한미연합사령부로 넘어간 한국군 군사작전권

이승만 전 대통령은 유엔사 창설 10일 전인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유엔사 사령관에게 넘겼다. 전쟁 도중 한국군을 지휘했던 유엔사는 1953년 7월 27일, 3년간의 전쟁 중단을 위해 당시 북한의 김일성, 중국 인민군사령관 팽덕회와 함께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1957년 7월 1일, 본부를 일본 도쿄에서 서울로 옮긴 유엔사는 4년 뒤인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자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령부로 넘겼다. 이후 1994년 12월 1일, 전쟁 때를 제외한 평시의 작전통제권은 한국군에 환수된 상태다.

이름만 남은 유엔사의 실체

유엔사의 원래 기능은 북한의 침략 격퇴와 국제평화와 안보 회복이었다. 1978년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에 넘어간 뒤에는 정전협정과 관련된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다.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정전위원회 가동 ▲중립국 감독위원회 운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관할 경비부대 파견 및 운영 ▲비무장지대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의 장성급 회담 등에 국한되어 있다. 정전협정 관리를 위해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유엔사 병력은 300명 정도의 비전투 인력이 전부다. 유엔사령관도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하고 있으며, 유엔사 간부도 미군 당국이 임명한다.

유엔과 무관한 '유엔사'

2018년 9월 17일 로즈마리 디카를로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유엔사는 유엔에 딸린 기구나 조직이 아니다. 유엔의 지휘·통제도 받지 않는다. 안보리 산하단체도 아니다. 따라서 유엔의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며, 유엔사와 유엔 사무국 간에 어떤 보고 체계도 없다"고 밝혔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도 재임 중이던 1994년 6월 "'연합군 사령부'는 안보리가 통제하는 산하조직이 아니며 단지 사령부를 구성하고 이를 주도하는 역할을 미국이 맡도록 '추천'했을 뿐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법적으로 유엔사는 유엔과 무관하다"면서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대라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엔사의 기능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의 달성'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의 출입통제권을 유엔사가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67년 전인 1953년 정전협정 때와 같이 엄격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공동선언, 2018년 4·27 판문점선언 등을 통해 남북간 상호 신뢰가 상당부분 축적됐다는 점에서 유엔사의 최우선 기능을 '한반도 평화협정에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전협정의 전문에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의 달성"을 협정의 목적으로 적시했고, 협정문의 조건과 규정들 또한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군사적 목적이 아닌 민간교류나 경제협력 사업을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유엔사 해체를 검토해야 할 시점

남북 정상은 2018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자주의 원칙과 민족자결권'에 기초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유엔사는 이를 방해하고 있으며, 그 뒤에 미군이 직접 개입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비판한다. 미군이 유엔사의 모자를 쓰고 한반도 기득권을 유지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 사업을 불허한 2018년 유엔사의 조치는 정전협정을 경직되게 적용한 것이고 명백한 주권 간섭행위"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향후 전시작전권이 한국군에게 전환된 이후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생명을 다한 유엔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 교수는 "한반도 평화 정착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유엔사의 해체를 포함한 근본적인 주권제약 해소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출구전략

이 교수는 "73년 장기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반도가 자주적 평화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유엔사 문제 이외에도 국내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에 역행하는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법 ▲남북관계발전법 등 냉전법령 개폐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정상 합의의 법적 실효성 확보를 위한 '남북법률실무협의회'를 구성한 뒤 자주·민족자결·당사자 해결의 원칙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도록 남북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