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어렵다고 무급 휴직 종용…"자가격리에 연차휴가 써라" 지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일본으로 최근 여행을 다녀온 직장인 A씨는 직장 상사로부터 "외국에 다녀왔으니 2주간 자가격리하라. 무급 휴가로 처리하고 월급은 그만큼 깎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보건소에 문의하니 의사 판단하에 신종코로나 유사 증상이 없으면 자가격리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상사는 외국에 다녀온 것 자체만으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신종코로나가 유행하자 일부 기업체에서는 발원지인 중국은 물론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등 확진자 발생국에 다녀온 직장인들에게 2주간 무급 자가격리를 지시해 불만을 사고 있다. 기업체들의 이런 방침은 현행법에 위반된다.

12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신종코로나 사태 이후 이런 고충을 토로하는 직장인들의 경험담이 여럿 올라와 있다.

작년에 예약한 말레이시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회사원은 "회사에서 여행을 다녀온 뒤 14일간 무급으로 자가격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황당해했다.

가족과 베트남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또 다른 회사원은 "회사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해외여행자는 귀국일부터 14일간 무급으로 자가격리하라는 방침을 내렸다"며 "호텔은 취소 불가 상품으로 예약해 환불받을 수 없고, 비행기표를 취소하려면 가족 4명의 수수료 48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신종코로나 여파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거나 직원들에게 장기간 무급 휴직을 종용하는 업체도 있다.

호텔업계에서 일한다는 한 회사원은 상급자로부터 "신종코로나 영향으로 회사가 어렵다"며 3개월 무급 휴직을 제안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경우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회사가 신종코로나 여파로 어려워져 무기한 무급 휴업에 들어간다고 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니 '권고사직은 해줄 수 없다'며 자진 퇴사하라고 한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해외여행 후 자가격리 지시와 함께 연차휴가 사용을 강요받기도 한다.

오는 13일부터 5일간 필리핀 여행을 갈 예정이라는 한 회사원은 "회사에서 여행을 다녀온 뒤 2주간 연차를 써서 자가격리를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한 직장인도 "10일간 회사를 나오지 말고 연차를 쓰라고 통보받았다"고 했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닌데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자가격리를 하면서 무급 휴가 또는 연차를 쓰게 하거나 회사 사정으로 장기간 휴업하면서 휴업 수당을 주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에 저촉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배포한 '신종코로나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에 따르면 해외 출장(여행) 후 복귀한 노동자에 대해 기업체가 국내 입국 후 14일째 되는 날까지 사내 의무상담실 등을 통해 자체 발열 모니터링을 하게 돼 있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의사 진단이 없는데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자가격리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노서림 노무법인 길 노무사는 "격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데도 사업주의 자체 판단으로 근로를 쉬도록 하는 것은 휴가가 아닌 휴업에 해당한다"며 "강제 자가격리도 이런 사례에 해당하므로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휴업 수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혜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신종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로 휴업하게 되면 회사 사정에 따른 휴업이므로 휴업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이런 경우 권고사직을 할 수 있으나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 자진 사직은 권유할 수 없고, 회사에서 권유한다 해도 근로자가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