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꿈과 기억을 비추는 영적(靈的) 거울 
▲ 영화 '거울'의 어머니가 공중부양하는 장면


"이 영화는 나 자신에 관한 영화입니다."

소련(현 러시아)의 한 영화 토론모임에서 참석자 전원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거울'(1975)은 소련의 천재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만든 자전적 영화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라며 공감을 나타낸 것이다.

카메라맨 유소프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작업 참여를 거부했다. 영화가 자전적 요소가 강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은 것 같다. 이 영화를 타르코프스키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으니 말이다.

중년에 접어든 감독은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무거운 돌덩이를 발견한다. 그 출처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마침내 영화 '거울'이 탄생한다.
오프닝 에피소드는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무거운 돌덩이를 안은 듯 한 포즈의 말더듬증 환자가 심리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두 손에 집중시킨 힘을 일순간 빼며 "난 말할 수 있어"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TV 속 화면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카메라는 울타리에 기대 담배를 피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을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결국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이후 남편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는 어머니와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는다.




●4원소설로 풀어낸 인간과 신과 우주의 관계

'거울'은 거의 목소리만 들리는 '화자(話者)'의 기억, 꿈, 환영 등으로 이루어진 모호한 내러티브 구조의 실험적인 영화다. 스크린 전반에 드리워진 시간의 '모호함'은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감독은 고대 우주생성론인 '4원소설'을 매개로 시적 이미지들을 창조하여 화자의 내면 심층을 무겁게 짓누르는 돌덩이의 실체를 파헤친다. 즉, 인간 간의 불화에 의해 물, 불, 바람, 대지 4원소의 조화가 깨지고 결국 우주 전체의 조화도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의 몫이 된다. 영화에서 물, 불, 바람, 대지는 이미지 배경에 머물지 않고 주연으로 부각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어머니가 머리 감는 장면을 예로 들면, 난로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파트 내부로 물폭탄이 쏟아진다.

이처럼 상극관계인 물과 불의 조합은 가정의 불화와 우주의 부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에 상생관계인 바람과 불의 조합은 가정의 화합과 우주의 조화를 되찾는데 시너지 효과를 낸다. 화자는 꿈속에서 바람의 인도로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옛 집을 거닐며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정화한다. 마침내 불이 다시 옛 집 난로에 피어오르면서 삼위일체가 완성되고, 우주가 다시 조화를 되찾으면서 대지에는 원초적 생명이 잉태된다. 그리고 아이의 우렁찬 외침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영화 속 유년시절은 화자와 감독의 기억을 넘어 익명의 기억이 된다. 보르헤스의 소설 속 무지갯빛 구체(球體) 알레프처럼, 이 영화는 우리 모두를, 그리고 우주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이 거울은 평범함을 벗고 위대한 거울로 거듭난 것이다. 불현듯 니체의 주문이 떠오른다. "네 가장 무거운 것을 심연에 던지라!"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