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문을 걸고 안방에 들어박힌 채 한 편의 드라마에 푸욱 빠져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 땅에 불시착한 미모의 재벌상속녀 윤세라(손예진)와 하늘에서 떨어진 그녀를 운명처럼 받아 안은 북한 청년장교 리정혁(현빈). 두 사람의 꿀케미가 똑똑 흐르는 '사랑의 불시착'이다.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의 평화 꿀케미에 박수를 보냈던 민초들은 TV에서 '남녀북남'의 사랑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리정혁과 윤세라가 즐겨먹는 BBQ의 황금올리브 치킨이 평시 대비 매출 100% 이상 급상승했고, 시청률은 15.7%(13회)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16회로 곧 종영된다고 하는데, 벌써 다음 시즌 2. 사랑의 불시착 제작을 기대하는 응원이 뜨겁다.

왜 이렇게 인기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장 먼저 손꼽는 원인은 현빈의 무뚝뚝하면서도 열렬한 연기, 손예진의 능청스러운 듯 청초한 연기력이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인기가 치솟은 이유가 사랑 연기에만 있지는 않다. 남북관계의 답답함을 사이다처럼 뚫었던 2018년 평화의 순간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김정은 위원장이 분단선을 살짝 넘어서던 그 포즈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우리는 왜 점점 멀어져만 가는가?

이 드라마의 백미는 북한사람과 사회에 대한 섬세한 묘사이다. '그 곳도 사람이 살고 있더라.' 아파트 베란다에 닭장이 있고, 욕조 안에서 염소 키우는 모습 등 북한사회가 생동하게 드러난다. 감시로 둘러싸인 숨막힐듯 한 북한사회에서 우리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공동체를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리정혁의 5중대 대원들, 표치수, 김주먹, 어머니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 흘리는 순둥순둥한 병사 금은동의 능청스러운 북한사투리 연기를 통해 우리는 정이 넘치는 북한군인들을 만난다. 대좌 아내 마영애, 인민반장 나월숙, 소좌 아내 양옥금, 도감청실 군인 만복의 아내 현명순 등을 통해 북한판 내조의 여왕같기도 하고, 좀 오래전 우리 동네 아줌마같기도 한 여성동무들을 만난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정겹다. 그런가하면 서단의 엄마, 평양백화점의 날고 기는 돈주를 통해 잊었던 복부인의 포스가 잠깐 스쳐 지나간다.

북한사회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건진 리얼리티의 재미 말고도 북측과 남측을 오가는 주인공들의 눈을 통해 만나는 새로운 한반도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북측 인물들의 눈을 통해 몰랐던 익숙한 남한을 낯설게 경험하고, 낯선 북한사회를 익숙하게 경험한다.

2020년 사랑의 불시착이란 드라마가 남북한 사람의 만남을 주제로 했던 영화들, 공조, 의형제 혹은 이만갑류 드라마와 큰 획을 그었음이 분명하다. 이만갑류의 탈북미녀와 흑기사 남한청년의 구도를 반전시킨다. 북측은 보호자가 되고, 남측은 보호를 당한다.

사랑의 불시착을 본다면, 북한주민들은 좋아할까? 탈북민들의 이야기는 엇갈린다. 한 탈북민은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서는 북한에 대해 '나름 많이 이해하고 접근하려고 한 흔적이 보이는 드라마'라고 후한 점수를 주는가 하면, 다른 탈북민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흥미가 없다고 한다. 어쨌거나 좋다. 드라마를 한번 잘 만드니 시청자, 연기자는 물론 광고주, 작가, 시민, 남한사람, 북한사람, 탈북민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겁다.
물론 드라마의 끝이 해피 엔딩으로 '결혼 그리고 사랑은 영원히'가 되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예상하는 바다. 정말 궁금한 것은 남한 재벌녀와 북한 총정치국의 아들이 어디에 신혼집을 차릴지이다. 하필이면 오늘 2월10일이 개성공단 폐쇄 4주년인데, 평양도 서울도 말고 개성공단에 가서 신혼살림을 차리면 어떨까? 김정은 문재인, 정상들의 반전 있는 '사랑의 연착륙'을 기대해본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실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미워도 다시 한번, 정 많은 한반도 시민들이 아니던가.

김화순 북한노동연구자·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