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당신

-문혜연-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이름이 됩니다/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옮아가는 인간들/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들어본 적 있어요/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새의 밑면만 지나갑니다/깊이 가라앉은 바닥, 그곳에서 우리는/떠오를 수 없는 낮은 음, 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안녕, 당신, 안녕/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 받아요/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나봅니다

-조선일보- 2019, 신춘문예 당선작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의미는 곧 나와 사물들을 구별짓는 것이고 이 구별은 다시 나를 '개똥'이나 '말똥가리'로 고착화시키게 되는 인식을 동반한다. 이 이름이 너와 나, 세계와 나를 구분짓고 이 구분이 감옥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나라고 명명할 그 무엇의 자성(自性)이 있는가? 자성이 있다면 '개똥'이라는 이름과 형상은 하난가 둘인가? 자성이 없다면 나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무자성(無自性)이 공(空)이고 무자성의 공이 곧 세계라는 것을 알게만 된다면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될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