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프랑스를 지향했던 사를 드골(1890~1970)의 회고록 <희망의 기억>을 읽어보면 유럽통합을 반대하고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영국의 의도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며 비판하고 있다. 영국은 1950년도 후반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및 베네룩스 등 6개국으로 출발한 유럽경제공동체(EEC) 구성을 반대하고 있었다. 1958년 파리를 방문했던 당시 맥밀런 영국 수상은 드골 대통령에게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재판인 EEC를 포기하지 않으면 전쟁상태가 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유럽통합에 대한 드골의 신념이 꺾이지 않자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EEC를 흡수·해체 시키려다 실패하고 스칸디나비아제국과 포르투갈,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조직해 맞서기도 했다. 이 같은 방해공작에도 EEC가 통합을 계속 진척시키자 영국은 EEC에 가입하기로 정책을 바꾸었다. ▶필자는 언론계 초년병 시절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근무하면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독자적인 외교정책과 알제리 식민지 전쟁을 종식시키는 용단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통합 유럽의 지도국을 꿈꾸는 프랑스에게 영국은 이를 저지하고 방해하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었고 드골은 EEC에 가입하려는 영국을 두 차례에 걸친 거부권 행사로 저지했다. ▶1969년 드골 대통령이 퇴임한 후 끈질긴 가입 노력으로 1973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EEC 총회에서 영국의 가입이 성사되었다. 가입한지 몇 년만에 영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앞지르게 되었으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전통적으로 경제주권을 중요시해온 영국은 EU 회원국이 확대되고 단일통화까지 실현되면서 대륙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고 역내의 미숙련 노동자들의 과잉유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EEC는 27개 회원국을 거느린 EU(유럽연합)로 확대되고 인구도 5억명의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EU 탈퇴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찬성 52%, 반대 48%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근 3년 반 동안 복잡한 탈퇴협상을 벌여오다가 지난달 3일 오후 11시를 기점으로 역사적인 '위대한 고립'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47년간에 걸친 유럽연합과 영국의 애증과 분열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이를 예견한 드골의 역사적 안목과 통찰력이 새삼 돋보였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