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이했다. 아마 새해 첫날 대부분 가정의 아침 메뉴는 떡국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진하게 우린 육수에 하얗고 쫄깃한 떡을 넣어 끓인 떡국 한 그릇과 더불어 나이도 한 살 더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떡국을 먹지 못한 사람들도 어김없이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을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떡국과 함께 나이도 먹는다. 왜 우리 조상들은 음식도 아닌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했을까? 아마도 그건 나이의 무게와 책임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느 하나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다. 농부의 수고와 하늘의 도움 그리고 수확한 재료를 나르고 팔고 다듬고, 또 원재료에 맛을 더해 조리해 내는 누군가의 수고를 통해 드디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형태의 음식이 탄생한다. 따라서 그 많은 수고를 통해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면 우리는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고 그 값진 음식을 먹은 만큼 힘을 내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밥을 먹고도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밥값도 못한다"고 핀잔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하듯이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만큼의 나잇값을 해야 한다. 나이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할 때 "나잇값도 못한다"거나 "나이를 헛먹었다"고 한다. 모든 나이에는 그에 걸맞는 값, 즉 나이마다 기대되는 행동과 태도, 품위와 역할이 있다. 30세가 되면 30년만큼의 나잇값을 해야 한다. 물론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30세 정도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스스로를 책임지고 또 가정을 일구어 독립하거나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또 50세가 되면, 직장에서는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 직원들을 지도하고 업무에서 중요한 책임을 갖게 되거나 가정에서는 장성한 자녀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양육하는 역할을 기대받는다.

이러한 나잇값은 노년에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노년의 나잇값은 무엇일까? 나는 노년의 나잇값을 '선배시민'에서 찾는다. 선배시민은 영어 'senior citizen'으로부터 나온 말로서 최근 들어 노인복지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선배시민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선배'와 '시민'이라는 두 개의 용어이다.

우선 '선배'란 사전적으로는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 즉 인생이라는 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일 분야 종사자들이다. 따라서 노인은 인생이라는 분야에서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나이나 지위 뿐 아니라 학예가 많고 앞선 사람이어야 한다. 인생을 앞서 살아오면서 더 많은 경험을 지닌 사람이며, 그 경험이 단순한 경험에 머물지 않고 그 경험의 의미를 성찰함으로써 인생의 더 많은 배움을 지닌 사람이어야 선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어사전에서는 '시민'을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이라고 설명한다. 시민은 시민으로서 적절한 권리 뿐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해야 한다. 민주(시민)사회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은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일부 양반이나 귀족 등 특권 계급만이 시민의 권리를 누렸지만, 시민혁명 이후 민주시민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시민이 되었다. 따라서 노인이 진정한 시민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회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 즉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사회가 올바로 나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해야 한다. 따라서 노년의 나잇값은 성년이나 중년의 나잇값보다 훨씬 더 무겁고 중하다.

노년이 진정한 노년의 나잇값을 하는 것은 나이와 권위만을 앞세우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이나 꼰대 노릇이 아니라, 진정한 선배시민으로서 모범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인생의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본보기를 보여주고 사회와 후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 경험으로부터 얻은 귀한 의미들을 나누어 주고 사회와 후대들을 위해 기꺼이 앞장 서 봉사하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해 이 시대 모든 노년들이 새해 한 살 더 먹은 노년의 나잇값을 더 멋지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정란 한서대 보건상담복지학과 교수·한국노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