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나흘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온 국민의 걱정이 크다. 국민은 이런 상황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이 적기에 가동하지 못한 데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국민이 거꾸로 정부를 걱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17년 전 참여정부에서 우리나라는 '사스 예방 모범국'이었다. WHO의 칭찬에 전 세계가 놀랐다. 2002년 겨울을 지나 2003년 3월 중국에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확산했을 때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신속하게 선제적인 대응을 지시하면서 사스 국내유입을 차단했다. 사스 방역대책은 출발부터 달랐다. 당시 한국에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나서서 군을 포함한 관계부처들을 총동원했다. 국무총리는 범정부 차원의 사스종합상황실을 만들고 "정부는 사스 의심환자를 10일간 격리할 수 있도록 조처하겠습니다. 필요시 지체 없이 동의해 주십시오"라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부의 대처는 일사불란했다. 우선 국내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1대 있던 열감지기를 10대로 늘려 김포, 김해, 제주에 배치하고 중국 베이징에도 1대를 보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승객들을 내리지 않고 군 의료진을 동원해 일일이 체온을 측정했다. 동시에 여행 자제국가를 알리고 여행을 금지시켰고, 상황실은 상황실 직원과 국립보건연구원, 일선 검역요원, 군 인력이 24시간 지켰다. 이 덕분에 아시아를 중심으로 중국과 홍콩에서만 648명이 사망하는 등 전 세계에서 8400여명이 감염돼 810여명이 숨졌지만, 국내에선 3명이 앓는데 그쳤다. 이 일로 정부는 이듬해 신종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국립보건원과 전국 13개 검역소를 통합하고 인력과 예산도 대폭 보강한 '질병관리본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는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해 5월20일 메르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1일이 지난 31일에야 민관합동대책본부를 만들었다. 당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6월2일에야 처음으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었다. 처음부터 질병관리본부에만 맡기고 다른 부처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의심환자가 홍콩과 중국으로 출국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내놓은 백서에서도 복잡한 컨트롤타워를 대응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을 정도다.

이번에도 부처간 엇박자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한 지역 교민을 국내로 이송하는 문제와 관련해 발열이나 기침 등 의심 증상자를 포함할 지 여부를 놓고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상반된 입장을 발표하면서 하루 사이에 결정이 두 번이나 뒤집혔다. 전세기도 당초 30일 오전 두 대를 띄울 것이라고 했다가 번복했다. 이들을 격리해 수용하는 장소 선정을 둘러싼 정부의 대처는 더욱 혼란스럽다. 특히 입국자 중 한국인 50여명이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아 허둥지둥 대고, 일본에서 귀국한 중국인은 확진되기 전까지 거리를 활보하면서 지역사회 전파 우려를 높였다. 범정부 차원의 대책들이 과연 치밀하게 조율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이번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 하나만 봐도 그동안 정부의 방역 대처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메르스 사태로 당시 역학조사관의 역할을 절감한 정부는 인력확충을 약속하고도 2016년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 또 복지부는 '시·도'에 국한한 역학조사관 채용 권한을 기초단체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수원시의 2년 전 건의도 묵살했다. 국회도 최근 3년 내리 검역인력 증원 예산을 삭감하면서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맞장구를 쳤다. 결국 본보의 연속보도로 이슈가 된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에 대해 복지부장관이 뒤늦게 법과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했다.

또 지난해 9월 김포·파주·연천과 인천 강화 등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했을 때에도 본보의 연속보도가 있기 전까지 수원시에 소재한 경기도동물위생시험소 대신 그 먼 경북 김천시를 오가며 시간을 낭비했다. 정부는 결국 ASF 검사권한을 경기도에 넘기는 내용으로 법령을 뜯어고치는 등 정부의 방역 대책이 '뒷북'의 연속이다.

그동안 시스템을 고친다, 새로운 정부 조직을 만든다 법석을 떨었지만 정부의 안전대책 수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고건 전 총리는 훗날 "사스 방역을 전쟁처럼 치렀다"고 말했다. 그만큼 치열하고 민첩해야 하는 게 방역이다.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