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기사에서 전업시인으로 전향
흙·나무로 손수 지은 집 '토우방'서 생활

경기민예총 멤버와 연간지 '다-다-1' 출간
역사·현주소 등 짚어내 … 내달 이사장 취임

기후재앙·자본주의 질주 막을 대안 '농사'
인간성·자연 회복 위한 예능인 역할 고민

 

이덕규 시인이 가지각생의 책들이 쌓인 자신의 방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화성시 정남면 일대로 자리한 보통 저수지를 끼고 500m 정도를 내려가다 보면 흙과 나무로 지어진 집 한 채가 보인다. 이 건물은 경기민예총의 산증인 이덕규(59) 시인이 1년여에 걸쳐 손수 지어 올린 집이다.

그 집의 이름을 이 시인은 '흙'을 떠올려 '토우방(土愚房)'이라 지었다. '농사짓는 시인'인 그와 참 잘 어울리는 집이다. 최근 그는 경기민예총의 주축 멤버들과 함께 민예총의 역사와 일대기를 다룬 연간지 '다-다-1'을 출간했다. 세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시(詩)를 그리며 예술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이 시인을 지난 28일 만났다.

 


#경기민예총을 다(多) 담다
지난해 12월, 이 시인과 경기민예총의 주축 멤버들은 역사상 전례 없는 경기민예총문학위원회의 최초 연간지 '다-다-1'을 창간했다.

'다-다-1'은 경기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지역민, 다문화, 소수자 등 다양한 계층과 여러 예술을 아우른다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포용과 상생, 평화 등 경기도 문화 예술이 지향하는 모든 바를 이 책 한 권에 녹여냈다.

"경기민예총은 선배, 동료 예술인들이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부조리에 맞서 왔던 단체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들의 지난 날에 대한 검열과 성찰이 필요한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자기 검열 없이는 타성에 젖어 도태돼 버리니 미래를 향한 스스로의 비판을 필요로 다다를 출간하게 됐지요."

다다에는 경기민예총이 걸어온 길, 현주소, 나아갈 방향 등을 상세히 짚고 있다.

민예총 역사에 한줄기 획을 그은 역대 산증인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다다는 출간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 시인을 비롯, 이성호 경기민예총 이사장, 홍일선 시인, 권용택 화가, 류연복 판화가,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학예팀장의 대담과 경기도 천년 역사. 경기지역 대표 문학인들과 미술, 문학, 민속굿 등 장르별 역사를 담아 312페이지 분량으로 엮여냈다.

"경기도만의 문화 무크지(책과 잡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부정기간행물)가 필요하다는 것에서 뜻을 같이 했죠. 경기민예총의 설립과정부터 각 지부와 장르별 활동 역사, 시대 변화에 따른 담론 제시와 기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출간을 추진했습니다. 다다는 분명 10년 후 큰 역사가 돼 있을 것입니다."



#시(詩)를 짓다
이 시인 앞에 종종 따라붙는 수식어는 '농사짓는 시인'이다. 실제 그는 농사일과 겸업해 작품 활동하고 있다. 첫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와 '밥그릇 경전', 최근 '놈이었습니다'까지 농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가업이던 농사를 이어받아 짓고 있고 아마 죽을 때까지 농사는 못 놓을 것 같습니다. 시에 농사 소재가 다뤄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테죠. 저는 농사 근본주의자입니다. 농사는 생태적인 부분들과 교착점이 있고 자연스럽게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지요. 작금의 기후적 재앙과 자본주의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막기 위한 대안은 농사밖엔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시인의 최대 관심사는 '환경'이다. 그는 도시 변화가 태동을 일으키던 때부터 환경운동으로 2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런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올겨울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집니다. 기후가 전달하는 무서운 메시지인 것이지요. 이런 메시지들이 정치적 이슈에 매몰된 채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문화 예술인들은 작품의 영역을 넓혀 이 현대사회에 닥친 환경적 재앙들을 가만두고 지켜볼 것이 아니라 꼬집어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시마(詩魔)가 덮쳤다
화성에서 나고 자란 이 시인의 유년 시절은 여느 농촌 마을의 아이들 모습과 같았다.

또래들과 어울리며 붕어잡이에 나서거나 황구지천을 뛰어놀던 개구쟁이는 이 시인이 어린 시절 간직해 온 풍경이다. 그런 그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심경의 변화가 찾아왔다.

이 시인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사이좋던 친누나가 세상을 뜨면서 그는 슬픔의 해방구로 문학을 선택했다.

"시마(詩魔)가 덮쳤달까요? 문학이라는 그물망에 포위된 느낌이었죠. 막막하고 갑갑했던 마음에 위안 삼을 곳이 필요했는데 시를 쓰면 그런 감정들이 해소됐습니다."

학부에서 토목을 전공한 그가 토목기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때에도 시에 대한 열망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는 돌연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시인으로 돌아섰다. "일을 하면서도 문학잡지를 들여다보거나 글을 쓰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결국 시 '양수기'를 가지고 문학계에 등단하게 됐어요. 등단을 하고 나니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주경야시(市)
이 시인은 낮엔 농사를 짓고 밤이 되면 시를 써 내려갔다. 일을 하다가도 이따금 시구절이 떠오르면 종이와 펜부터 들었다.

그는 활동 영역을 지역사회로 넓혀갔다. 지역사회를 위한 일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환경운동연합회에 20여 년간 몸담으며 산업화와 난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화성지역의 환경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어느 지역에서든 정치적인 부분이든 환경적인 부분이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술인들은 현장으로 들어가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함께 나눠야 합니다. 지역의 사안들을 사진, 퍼포먼스, 미술, 문학 등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해요. 혹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며 손가락질하겠지만 물이 새어 나온 독 주변으로는 분명 꽃이 필 것이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곧 터전이 될 것입니다."

이토록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문화 예술로 소통하고자 했던 이 시인은 내달 19일, 경기민예총 이사장직에 취임한다. 그는 경기민예총과 지역예술인들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한 사명들에 대해 공고히 했다.


"갈수록 자본에 의해 상실돼 가는 인간성 회복에 대한 문제, 점차 망가져 가는 자연환경 속에서 예능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훼손시킨 것들을 다시 돌려놔야지요. 이것이 앞으로 경기민예총의 역할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이덕규 시인은


1961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이덕규 시인은 화성 토박이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한 그는 98년까지 농사를 겸업했다.

당시 지역 환경운동연합회에 몸담으며 시민 연대 활동들을 열정적으로 진행했다. 같은 해 시 '양수기'로 현대 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2003)'와 두 번째 시집 '밥그릇 경전(2009)', 세 번째 시집 '놈이었습니다(2015)'를 출간하면서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2009년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과 경기민예총 문학위원장을 역임했다. 내달 경기민예총 이사장으로 취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