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따르는 로마의 (요리)법

 

"이탈이라 사람들이 원래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고 옆집 사람이 뭘 먹었는지 관심이 많아요. 제가 두 딸을 데리고 두 번째 로마에 갔을 때 옆집에서 툭하면 '모니카야 와서 밥먹자'하면 가서 그집 음식을 같이 먹고 또 한국음식을 해서 가져가서 먹곤했어요. 그러면서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배우게 됐죠."

인천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주택가의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이탈리아 가정식 코스요리를 제공하는 원 테이블 식당 '디 모니카'의 고영심 대표는 "제 세례명인 '모니카'에 영어로 '오브(of)'인 이탈리아어 '디(di)'를 붙여 '디 모니카'로 가게 이름을 지었어요. '모니카의~'라는 뜻인데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이탈리아 요리 '쿠킹 클래스'를 열기도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요."

인천 토박이인 고영심 대표는 로마 교황청에서 설립한 라테라노대학교에 두 차례의 유학을 통해 신학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진행 중이다. 지금도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혼인·가정 신학'을 가르치고 있고 1년에 한번 정도 국제콘퍼런스에서 수행통역과 함께 논문이나 책 번역 활동을 하고 있는 고 대표가 지난 2014년 가을, 이곳에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 전문점을 차리게 된 것은 우연처럼 시작됐다.

"1983년 한국에서 1명뿐인 장학생으로 선발돼 신학공부를 하고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큰 딸이 6학년이 됐을 때인 2000년에 두 번째 로마생활을 시작한 뒤 10년 동안 애들과 함께 저도 공부하며 살다 왔어요. 돌아와서 로마에서 즐겨 먹던 요리를 만들어 이웃을 초대해 나눠 먹었고 음식 솜씨가 소문이 나면서 아예 '디 모니카'를 열게 됐어요."

고영심 대표가 아파트 대신 마당 있는 이 집에 로마에서 쓰던 식탁은 물론 접시, 찻잔, 주방도구, 액자, 소품 등을 그대로 옮겨와 음식뿐 아니라 공간도 이탈리아식으로 꾸민 것은 원 테이블에서 '마치 잘 아는 사람의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가족끼리 또는 친구들이나 연인, 동료들끼리 번잡스럽지 않게 오순도순 천천히 이야기하며 음식 맛을 보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월미도는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산과 바다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고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수도권 사람들이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아름다운 월미도에서 맛보는 이탈리아 음식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중해식으로 요리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사용하고 설탕을 절대 넣지 않아요. 소금, 후추만 사용하고 향신료도 과격하게 쓰지 않아요. 식재료가 적게 들어가도 본연의 맛을 창출하는 건강한 음식을 드리려고 해요."

고 대표는 해마다 2월과 11월에 열리는 학회 참석을 포함, 1년에 3~4차례는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나 향신료, 오일, 냅킨 등을 직접 사온다.

"벌써 햇수로 7년이 됐는데 항암치료를 받던 분이 다른 음식은 전혀 못드시는데 제가 만든 음식은 에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다 드시는 걸 봤을 때나 손님들이 '로마와 인천' 또는 '지중해와 월미도'를 잇는 공간이라 불러줄 때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제 일정이 맞지 않아 '디 모니카'에 예약을 하려던 손님을 받지 못했을 때는 죄송할 따름이지요."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하며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면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따라 1팀에 4~8명씩 하루에 점심, 저녁 두 팀만 고영심 대표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032-773-9723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이탈리아 가정집 온 듯 … 커피도 직접 내리는 '그 집'의 추천메뉴]

 

 

▲ 부르스케타
▲ 부르스케타
▲ 인살라타
▲ 인살라타

●안티파스티(Antipasti)
안티파스티는 이탈리아에서 메인 요리 전에 먹는 전채 요리를 가리키는 말로, 영어의 '에피타이저(Appetizer)'에 해당한다. '디 모니카'에서는 바게트 또는 식빵 위에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로만 조리한 호박, 버섯, 오이를 얹은 부르스케타를 먼저 선보인다. 이어 '디 모니카'의 시그니처 인살라타(샐러드)로 생 모짜렐라 치즈와 껍질을 벗긴 토마토 그리고 루꼴라에 올리브유, 소금과 발사믹식초와 발사믹크림을 즉석에서 얹어 낸다. 인살라타는 밀가루, 올리브유, 소금, 이스트를 넣어 10시간 이상 발효시켜 구운 정통 이탈리아 제노바식 포카치아 빵을 함께 올린다.

 

 

 

 

▲ 라자냐
▲ 라자냐

●프리모(Primo)
'프리모'는 '첫 번째'라는 뜻으로 메인 요리인 세콘도를 먹기 전에 나오는 파스타나 리소토 등을 일컫는다. '디 모니카'에서는 계절에 따라 파스타나 리소토가 바뀌는데 이날은 반죽을 얇게 밀어 넓적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파스타인 '라자냐'를 선보였다. '디 모니카'의 라자냐는 토마토와 고기 소스인 라구, 버터를 쓰지 않고 올리브유로 만든 벨사멜 화이트크림, 파르메산 치즈,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계란으로 반죽한 생면 라자냐를 속재료와 함께 층층이 쌓아 오븐에 구워 만든다.

 

 

 

▲ 한우 안심 스테이크·인살라타 미스타
▲ 한우 안심 스테이크·인살라타 미스타

●세콘도(Secondo)
메인 요리라 할 수 있는 세콘도는 한우 안심 스테이크와 인살라타 미스타가 나왔다. 인천 십정동 축산물시장에서 구입한 최상품 1++(투 플러스) 한우안심으로 구운 스테이크와 함께 치커리, 자주색 치커리인 라디키오, 양상추 일종인 라투가 등 싱싱한 야채를 올리브유, 소금, 약간의 발사믹식초와 레드와인 식초로 버무린 인살라타를 곁들인다.

 

 

 

▲ 호두 토르타·카페 에스프레소
▲ 호두 토르타·카페 에스프레소
▲ '디 모니카'의 디저트인 카페 에스프레소는 모카포트로 직접 끓인다.
▲ '디 모니카'의 디저트인 카페 에스프레소는 모카포트로 직접 끓인다.

●디저트(Dessert)
이날의 후식으로는 밀가루를 넣지 않고 만든 케이크인 호두 토르타가 나왔다. 속껍질을 벗기고 갈은 호두와 계란 노른자에 약간의 럼주로 크림을 만든 뒤 흰자의 거품으로 버무려 오븐에 구운 토르타에 건포도를 몇 개 얹었다. 달달한 토르타를 로마에서 공수해온 커피를 국내에서는 모카포트로 알려진 카페티에라로 올린 카페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으면 로마 가정식의 풀코스를 맛보게 된다.

 



[이현경 한복 디자이너가 찾은 '디 모니카']

 

"천연염색 곱게 물들인 한복처럼 멋까지 갖췄네요"

 

▲ '에스더 리'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이현경 한복 디자이너가 인천 월미도에 있는 이탈리아 가정식 원 테이블 식당 '디 모니카'를 찾았다.
▲ '에스더 리'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이현경 한복 디자이너가
인천 월미도에 있는 이탈리아 가정식 원 테이블 식당 '디 모니카'를 찾았다.

 

"저는 한복 작품에 우리의 민족혼과 한시대의 생활상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복 디자인의 패턴이 고구려와 조선시대가 완전히 달라요. 조선시대의 옷은 부푼 모양이어서 활동하기 불편한 반면, 고구려 의복은 폭이 좁아 편안하고 입체적인 패턴으로 세련된 디자인이었는데 저는 요즘 고구려 복식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있어요."

'에스더 리'라는 한복 브랜드로 세계 패션시장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이현경 '자연과창의성㈜' 대표가 인천 월미도에 있는 이탈리아 가정식 전문점 '디 모니카'를 찾아 한복 염색과 디자인, 로마 요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민족의 복식과 문양, 색채는 작게는 개인의 개성부터 넓게는 민족의식을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 민족의식을 외국인들에게 가장 쉽게 알리는 방법으로 한복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때문에 한복 디자인 콘셉트를 잡을 때도 스토리텔링과 의미부여와 함께 세계적인 트렌드를 조사하고 고객의 니즈에 맞는 맞춤형 작품을 선보이려고 해요"

이 대표가 한복에서 강조하는 점은 디자인과 함께 천연염색이다. 동의보감과 규합총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염색에 필요한 천연 재료를 구해 직접 끓이고 추출해서 염색물을 만들어 천에 직접 칠하고 말리기를 몇 차례씩 반복하는 전통방식을 고집한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염색이 아닌 손으로 직접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힘들지만 저라도 전통의 손날염 방식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손날염을 고수하고 있어요. 한복에 손날염으로 우리민족의 문양과 색채를 살려 우리 복식 문화의 맥을 잇고 후손에게 전수하고 세계인들에게 선보이려고 해요."

이현경 대표는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올해 봄·여름 패션시장을 겨냥해 개최된 '파리패션위크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입는 스카프'라는 새로운 장르 개발로 한복과 한국의 천연염색에 대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는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이신 백태호 교수님이 계셨기에 가능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백 교수님은 염색 공예의 대가로 이화여대 대학원장으로 계실 때 저의 가능성을 믿고 받아주셨고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논문지도와 심사비용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백 교수님께 배운 손날염 기법을 제가 특허를 내서 계승하고 전수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백 교수님은 신뢰라는 큰 가르침을 주셨어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염색공예로 석사, 명지대 의상학과에서 한복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현경 대표는 천연염색 명인 제016호 보유자다. 20대 중반 '에스더 리'라는 브랜드로 창업한 뒤 국회 '파티한복' 패션쇼, 문화관광체육부의 한복페스티벌, 인천아시안게임 패션쇼, 세계평화봉사사절단 패션쇼 등 국내는 물론 일본, 홍콩, 몽골, 캄보디아, 호놀룰루, 베트남, 파리 등의 패션쇼에 참가했다. 특히 2003년 홍콩에서 열린 패션쇼 참가를 계기로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에 이름과 작품을 올렸다. 또 우크라이나 대통령 영부인과 필리핀 대통령 등 외국 국빈의 의상을 제작하며 민간외교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작품활동하랴 사업하랴 정신없이 보내는데 2000년대 말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아 한복사업이 극심한 침체기를 맞게 됐지요.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린 뒤 2014년 '쪽빛체험마을㈜'를 설립하고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며 사업방향을 바꿨어요. 2017년에 회사이름을 '자연과창의성㈜'로 변경하고 한복과 천연염색의 체험과 교육을 통해 청년 및 경력단절여성에게 취업과 창업으로 이어지게 돕고 있어요. 또 송도국제도시의 외국인들에게는 한복과 우리전통문화를 알리고 정부와 지자체와 공공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장애인과 노인, 미혼모, 교도소 수감자,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앞장서는 이 대표는 올해는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얼쑤장터'를 확산시키고 외국 2~3개 도시에서 제안받은 국제패션쇼 참가도 검토하고 있다.

"이탈리아 음식은 제가 원래 좋아했는데 '디 모니카'의 모든 요리는 하나하나 맛도 뛰어나지만 한복에 날염하듯 멋진 디자인으로 놀랄 만큼 감동이었어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