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의 빛깔로 쓴 성스러운 영상의 詩
▲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대지의 여신.


"내게 삶과 영혼은 고문이다."

흰 천을 붉게 물들이는 석류의 이미지 위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는 영화 속 주인공인 시인의 내면의 독백이자, 파라자노프 감독의 절규이기도 하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이후로 그는 소련 당국과의 마찰로 체포와 투옥을 반복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18세기 아르메니아 음유시인 사야트 노바(Sayat Nova)의 일대기를 그린 '석류의 빛깔'(1968)도 강한 종교적, 민족적 색채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벗어난 전위적인 형식으로 인해 제작단계부터 당국의 심한 간섭과 탄압을 받았다. 결국 이 영화는 다른 사람에 의해 재편집되어 제한적으로 상영될 수밖에 없었고 1977년에야 뒤늦게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시인의 내면세계를 재창조하려 했다." 이 오프닝 자막만 봐도 영화 전체에 흐르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내러티브 구조 해체, 상징과 은유의 실험적인 이미지와 사운드, 성별을 초월한 1인 다역의 배우 연기 등 기존 영화문법을 완전 깨부순 파격적인 연출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오프닝 자막에서 예시한 대로 이 영화는 사야트 노바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시인의 삶의 파편들을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 붙여서 프레스코화 같은 화면으로 그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했다.




●성(聖)의 세계로 회귀하는 순례의 여정

'석류의 빛깔'은 기독교 창조론에 아르메니아 민족의 토속신앙, 민속풍습, 전통예술 등을 결합하여 성(聖)과 속(俗)이 순환 반복되는 순례의 여정을 상징적 '사물의 언어'로 그려내었다. 정물화 같이 배치된 사물들, 무표정한 인형 같은 인물들, 그리고 경계가 모호한 초현실적 공간들 등 영화 속 사물, 인물, 공간은 익숙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심지어는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는 '오래된 낯설음'이라고 할 수 있으며 태초부터 우주 만물에 깃든 감춰진 성스러움이 영화 이미지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신의 천지창조부터 시인의 탄생, 성장, 사랑, 출가, 죽음 등 삶의 단편들이 통과의례처럼 펼쳐진다. 사실 이 영화는 음유시인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전체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성스러운 땅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속(俗)의 세계로 추락한 인간이 다시 성(聖)의 세계로 되돌아가려는 존재론적 갈망을 그린 것이다. 이는 인간을 창조한 신의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엔딩 장면에서 시인에게 죽음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대지의 여신'의 등장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순환의 고리가 연결된다.

속(俗)의 세계에서 고문 같은 삶을 살다가 떠난 사야트 노바의 일생은 파라자노프 감독의 일생을 거울처럼 비춘다. 소비에트 연방 소속 조지아(옛 그루지야)의 아르메니아 혈통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난 파라자노프는 서로 다른 민족, 종교, 문화들이 한데 어우러진 환경을 배경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영화들은 일관되게 민족적, 종교적, 전통적 색채가 물씬 풍긴다. 다채로운 빛깔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양탄자 같은 성스러운 세계를 꿈꾼 그의 마지막 노래가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다. "내가 살든 죽든 내 노래는 사람들을 깨울 것이니 … "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