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디딤돌이 된 판결, 버팀목이 될 제도
[법조칼럼] 디딤돌이 된 판결, 버팀목이 될 제도
  • 정기환
  • 승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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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의 경우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심리적 미성숙, 자책감, 두려움 등으로 인해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동·청소년기에 입은 성폭력 피해는 성인이 된 이후의 삶, 특히 결혼, 출산, 육아 등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폭력처벌법은 지난해 13세 미만의 사람 및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해 강간, 강제추행 등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하도록 개정되었으나, 부칙에 따라 위 개정법률은 2013년 6월 19일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에 한정해 적용하게 되므로 2013년 6월19일 이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민사적으로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는 시효가 소멸'하게 되므로, 아동·청소년기에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주위에 알리지 못하고 홀로 감당하며 살아왔던 피해자들의 권리구제가 더욱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의정부지방법원은 18년 전 초등학생 때 운동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년이 된 뒤 가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형사재판의 1심 판결 선고일이고(3년 소멸시효의 기산점), '불법행위를 한 날'은 손해가 현실화 된 시점, 즉 성인이 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날(10년 소멸시효의 기산점)"로 보는 것을 전제로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당 판결이 아동·청소년기 입은 성폭력 피해의 구제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아동·청소년기 성폭행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형사 처벌에 이르게 하거나 자신이 입은 정신적·신체적 피해에 관한 배상을 받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앞선 의정부지방법원 사건은 가해자의 성폭행 사실이 입증돼 형사 처벌을 받은 사안으로, 이와 달리 실제 대다수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것에서부터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아동ㆍ청소년의 경우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진술을 아동·청소년들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려는 사회적 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것인데, 아동·청소년들이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혹은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증거의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피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1차 상담을 넘어서서 보다 적극적으로 증거를 확보하여 법적 분쟁에까지 대비할 수 있도록 상담·대응 매뉴얼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아울러 확보된 증거가 법정에서 증거능력 및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선 과정에 법률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교육을 통해 아동ㆍ청소년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경우의 신고 절차, 대응 방법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원진 법률사무소 송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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