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뻘뻘 흘리고 작업 중이던 포크레인 기사의 눈이 휘둥글해졌다. 이상한 물체가 포크레인 갈고리에 걸려 손끝의 감촉이 달랐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려가 살펴보니 돌무덤이었다. 무심코 긁어내렸다면 큰일날 뻔하였다.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지역의 원당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는 현장에서 선사유물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 지인들과 검단선사박물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구석기시대는 약 70만년 전부터 1만년 전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선사유물이 출토되었던 그 자리에, 즐비한 아파트와 이웃해 박물관이 자리잡게 되었다.
박물관의 뒤편에 돌널무덤이 있는 해발 40m의 구릉 정상부에 올랐다. 초겨울의 바람을 등지고 오르니 직사각 모양으로 여러 개의 돌받침이 정돈되어 있어 한눈에도 사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돌널 내부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고 덮개돌을 얹은 형태의 청동기 시대 무덤이라고 했다. 문득 고향마을 산등성이에 모신 아버지의 석관묘를 떠올렸다. 네모 난 석관에 유골을 맞추어 모시고 얇은 두께의 돌 뚜껑을 덮어 이장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웃는 얼굴의 박물관 문화해설사는 에너지가 넘친다. 검단선사박물관이 이 지역의 출토 유물만으로 전시관을 채우고 있는 자긍심의 표출일까. 검단지역은 원당동, 불로동, 당하동, 대곡동, 오류동, 동양동 등 문화재 군락지를 포함하고 있다.

연전에 대곡동 동네 초입에 있는 고인돌을 보고 심상치 않았는데 원당동의 돌널무덤, 뒷시대의 경서동 녹청자도요지 등의 선대 문화유적을 보면서 이 지역이야말로 선사시대의 핫 플레이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시 유물의 이름에도 정겨움이 묻어났다. 나무를 자르는 '톱니날', 곁가지를 다듬는 '홈날', 동물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미고 다듬는 '긁개' 뿐 아니라 딱딱한 물체에 홈을 내는 '새기개', 자루에 매달아 던져 동물을 사냥하는 '찌르개'도 있었다.

특히 유물 출토 현장을 절개한 지층의 실물 전시품을 보니 현재의 지층에서 철기시대, 청동기시대, 신석기시대,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내려가는 모습이 확연히 구별되어 신기했다.

지명으로 짐작되듯이 원당동은 제사를 지내는 '당이 있는 마을'이고, 당하동은 당의 아랫마을이다. 제사장은 제정일치의 권력으로 지역을 통치하며 하늘에 제를 올렸으리라.

검단선사박물관 주변을 둘러보니 검단신도시의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을 드나드는 트럭과 포크레인, 타워크레인이 바삐 움직이고 도시의 건물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여기에 선인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움집을 만들고 석기를 사용하는 생활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손홍재 전 인천서부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