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당장 불편" 사거나 가져와 사용
쓰레기 감소는 커녕 테이프 판매만 증가
"대형마트에 있던 종이상자 포장 테이프가 모두 사라져서 장을 보는 김에 테이프를 함께 샀습니다. 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당장 너무 불편해서 어쩔 수 없네요."

13일 오후 수원 팔달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박모(37·여)씨는 상자 포장을 위해 샀다는 테이프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장바구니를 사는 것보다 테이프가 더 싸고 편하다"며 "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는 공감하나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에 불편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올해부터 대형마트 자율포장대 내 테이프와 노끈 등이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를 활용한 상자 포장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테이프를 직접 사거나 집에서 가져오는 문화가 자리 잡은 탓인데, 이로 인해 테이프 판매량이 늘자 탁상행정의 부작용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해 8월 대형마트 4개사와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점포 운영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은 바 있다.

환경부 조사 결과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발생한 테이프 등 플라스틱 폐기물이 연간 658t 규모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2016년 제주도에서 대형마트 내 종이상자를 모두 치우자 장바구니 사용 사례가 늘어난 것처럼, 이번 협약 역시 폐기물 감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대와 달리 오히려 테이프를 사는 현상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실제 이날 마트에서 만난 이진우(29)씨는 "상자를 (테이프로) 감싸지 않는다면 가져가는 도중에 부서지기 일쑤라 결국 테이프를 사야 한다"며 "상자는 제공하나 테이프를 없앤 건 소비자보고 이를 부담하라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자 대형마트는 자율포장대를 없애는 방안까지 고민하는 실정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동기간 대비 테이프 판매량이 소폭 상승했고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율포장대가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는 것 같아 없애는 방안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계기로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필요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테이프를 없앤 탓에 소비자들에게 큰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며 "더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대책을 제시하는 등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환 기자 imsen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