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환자분은 요추 4, 5번 추간판 탈출증(일명 디스크)과 척추 협착증을 앓고 있습니다." 인천의 N병원에서 MRI 검진을 받은 나에게 P병원장은 '요추부 경피적 내시경 레이저 디스크 절제술'과 '경막외 신경성형술' 2건의 시술을 권했다. 비용은 약 500만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쉬며 병원을 나온 나는 답답한 마음에 페이스북 등 SNS에 MRI 검진 사진과 시술 건을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무림의 강호들, 재야의 고수들 그리고 허리 아픈 선배들의 조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약 100명 중 95명이 이구동성으로 "허리는 시술·수술 받으면 큰일난다"부터 "운동치료를 해라", "그냥 3개월 누워 버텨라", "지네를 먹든지 지네술을 먹어라" 등 반대론자 일색이었다. 그중에 가끔 "시술·수술로 거뜬해졌다"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당장 아픈 마음에 시술비 걱정부터 자연치유, 운동치료 방법은 없을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수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영을 하게 된 이유는 발레 안무를 하는 S선생님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과 작업실에 가까운 계산국민체육센터, 남동국민체육센터, 구월동 아울렛 수영장 이렇게 3곳에서 시간이 맞는 데로 매일 수영을 했다. 처음에는 물의 부력조차 걷기에 버거웠다. 수영은커녕 그냥 걷기도 힘들었는데 근 석 달이 되어가는 지금은 25m 레인 3바퀴(75m)를 당당히 자유형으로 수영하고 있다. 처음에 수영장을 갔을 때 제일 놀란 것은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낮 시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레인에 모여서 제자리를 뛰거나 살살 걷는 것이었고, 저녁시간 쯤에서는 퇴근해서 오는 직장인들이 조금 있는데 모두들 자신에게 맞는 즉, 걷거나 수영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시간에 몸이 물의 수면을 타고 자연스레 수영을 하고 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몸이 물을 탄다'라는 느낌이랄까. 25m 레인 끝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도 호흡과 몸 전체가 힘이 들지 않고 매우 편한 상태였다. 수영은 물과 하나가 되는 때가 최고의 경지이다. '물을 타는 그 맛'을 강하게 느낀 후 매번 그 느낌을 찾으려 하지만 아직까지는 두 번 다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으로부터 온 자연 자체이며, 우리 모두는 바로 신과 같은 존재(Tat Tvam Asi, 우파니샤드)이다. 자연이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훼손하고 훼손당할 때 아프게 되는 것이다. 아픈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픔에서 회복될 때도 있다. 내가 수영을 해서 회복되는 것도 있지만 훼손당한 자연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던 자연으로 회귀할 때 비로소 치유가 되는 것이다. 나와 사물로 분리되었던 주체와 타자로서가 아닌 물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에 '자유'를 획득하고서야 몸이 회복되는 것이다. 물을 타는 느낌, 그것이 바로 자연에서 자연의 몸이 치유되는 것이다. 자연 자체인 우리는 자연과 조화롭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순리인 것이다.

수영장의 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젖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허리, 무릎, 목, 팔 등 개별 부위에 효과를 발휘한다. 아픈 것에는 분명히 원인도 있지만, 치료법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아픔과 건강함, 고통과 기쁨은 끊임없는 시비(是非)로 나타난다. 처음부터 그것을 명석하게 사유할 수 없지만 그 고통과 번뇌에서 헤쳐나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철학하는 것이요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허리 디스크라는 질병에서 정직한 몸의 균형으로 돌아온 과정 속에서 '수영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반성'이다.

/사유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