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은 위법의 불씨, 결국 화를 키웠다

 

▲ 인천시지하도상가조례 개정안 재심의가 확정된 가운데 인천지하상가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019년 11월7일 인천시의회 앞에서 피해최소화를 위한 조례개정안을 촉구하고 있다. /인천일보 DB

 


-전국 최다규모 상가 '불법' 오명

민간재위탁·전대 등 통해 기형적 성장

6개 특·광역시 중 유일하게 불법허용


-바로잡을 기회 놓친 인천시

2002년부터 조례 개정 이뤄졌지만
'떼우기 식' 수정 머물면서 위법 묵인


-법보다 책임회피 급급한 시의회

인천시 감사원 지적에 마련한 개정안
상인 '임차인 보호 부칙'에 반발하자
대폭 손질하며 위법 개선 또 미뤄
올 계약 만료 3곳 행정집행 가능성도





3579개. 전국 최다 규모인 인천 지하도상가 점포 수다.

1972년 새동인천을 시작으로 2000년 부평대아까지 15개 지하도상가가 경인선 역세권을 중심으로 들어섰다.
행정재산인 도로 지하 공간에 상가와 보도를 건설한 민간이 무상 사용권을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지하도상가는 지난 2002년 관리·운영 조례 제정으로 한 차례 변화의 길목에 섰다.

당시 조례는 위탁 관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개축·보수 비용을 부담하면 수의계약을 통해 20년 범위에서 사용권을 연장하는 길을 열었다.

상위법에 상충되는 이들 조항은 2007년 이후 정부의 개정 권고, 특혜 지적이 되풀이됐다.

수십 년간 기형적 구조로 몸집을 불린 지하도상가 문제는 지난해 감사원 지적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년 넘게 지속된 조례 개정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 조례'가 개정된 건 지난 2007년이 마지막이다.

시 인천시는 상위법에 해당되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정·시행을 사유로 조례를 개정했다.

법에서 금지한 민간 재위탁과 개보수를 통한 계약 연장, 양도·양수, 전대는 그대로 허용됐다.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법령 문구 등만 수정됐다.

지하도상가가 운영 중인 전국 6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이들 위법 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곳은 인천시가 유일하다.

불씨로만 남아 있던 갈등은 지난해 조례 개정 과정에서 마침내 폭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연간 460억원 부당이득"

시는 지난해 6월 지하도상가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에 어긋나는 조항을 전면 개정하는 내용이었다.

수의계약으로 상가 사용 기간을 연장하는 대신 일반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민간 재위탁을 하지 않도록 했다. 임차권을 양도·양수하거나 전대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조례 개정 움직임은 감사원 지적에서 비롯됐다. 감사원은 2018년 10월부터 53일간 인천 지하도상가 관리·운영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지난해 5월 공개한 감사보고서로 지하도상가의 민낯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인천시설공단이 관리하는 배다리를 제외한 "14개 지하도상가가 상위 법령에 벗어나 관리되면서 점포 임차인들은 전대 및 임차권 양도·양수 등을 통해 연간 459억7514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얻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지하도상가 재위탁 및 점포 대부기간이 최대 20년까지 갱신됐거나 갱신될 예정으로 있는 등 상가 법인과 점포 임차인들에 대한 부당한 특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조례를 개정하도록 주문했다.

감사원 지적 이후 시가 지난해 1~2월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하도상가의 기형적 구조가 확인됐다.

민간 법인에 재위탁된 13개 지하도상가의 3319개 점포 가운데 임차인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15%(504개)에 그쳤다.

대다수인 85%(2815개)는 재임대로 수익을 올리는 전대 점포였다. 수익률은 임차인이 내는 사용료의 최대 12배에 달했다.

임차인의 26%는 인천 거주자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노선 넘은 시의회 수정안

시의 개정안이 공개된 직후부터 지하도상가 측 반발이 들끓었다.

지하상가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조례만 믿고 전 재산을 투자해 상가를 운영해왔다. 재산권 손실을 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는 조례안 부칙에 임차인 피해 대책을 포함시켰다.

계약 잔여 기간이 5년 이하인 상가는 2024년 말까지 영업 기간을 연장하고, 전대와 양도·양수 금지는 2년간 유예한 것이다.

5년 넘게 남은 상가의 계약 기간은 그대로 인정해줬다. 이들 부칙도 현행법에 위배되지만 정부와 협의를 거쳐 마련한 마지노선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개정안은 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심의에서 진통을 거듭했다.

건교위는 지난해 8월30일 "기존 조례를 신뢰한 임차인의 선의의 피해 발생과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개정안 처리를 보류했다.

"2018년부터 시민협의회를 구성해 논의했지만 간극이 커서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는 시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개정안은 입법예고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10일 건교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시가 제출한 원안은 수정됐다. 법대로 민간 재위탁과 전대, 양도·양수 등을 금지한 본문은 그대로였지만 임차인 보호 대책을 담은 부칙이 대폭 손질된 것이다.

건교위는 계약 기간을 최소 10년간 연장해주고, 전대와 양도·양수 금지 기간은 5년으로 늘렸다.

겉으로 보면 시와 지하도상가 측 요구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법적 테두리의 마지노선을 넘은 셈이 됐다.


▲'시한폭탄' 3개 상가 계약만료 눈앞

건교위가 수정한 조례안은 시의회 본회의까지 통과됐지만 후폭풍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시는 행정안전부와의 협의에서 "개정 조례가 상위법령에 위배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례 개정 논의 과정에서 마지노선을 넘으면 "재의 요구가 불가피하다"고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결국 시는 최근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 조례 개정안 재의요구안'을 이달 말로 예정된 시의회 임시회 부의 안건으로 공고했다.

조례 개정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이번 임시회 기간인 2월2일 인현 지하도상가는 계약 기간이 만료된다.

오는 4월13일에는 부평중앙, 8월31일에는 신부평 지하도상가도 같은 처지에 놓인다.

이들 지하도상가 계약 만료 전에 개정 조례가 시행되지 않으면, 애초 개정안 부칙에 담겼던 임차인 피해 대책은 적용되지 않는다.

퇴거 통보와 행정대집행 등의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향후 법적 다툼도 불가피해 보인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인현 지하도상가는 임차인들에게 계약 기간 만료 예정을 통지했다"며 "추가적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부평중앙, 신부평 지하도상가도 실 점유자를 대상으로 행정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