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적 시대 민중의 절규 새날 꿈꾸며 화폭에 담다

 

▲ 권용택 작 '양심수를 석방하라'(1990)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미술동인 '새벽'의 활동을 보도한 당시 신문기사.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수문연서 정치현안에 비중 둔 활동
지역 화단과 정서적 대립으로 갈등
88년 사회구조 문제제기 위해 결성
91년 수원미술인협회로 확대 개편


한국 화단에 반기를 든 청년들, 80년대 미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저항'일 것이다. 변화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은 침묵보다는 비명을 택했고 비명이 있는 곳엔 언제나 미술동인 새벽이 자리하게 했다. 지역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격동의 시대 최전방에서 민중의 소리를 대변했던 수원지역 미술 소집단 미술동인 '새벽'을 지난달 26일 만났다.


시점·시점_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
▶기간 : 2019년 10월29일~2020년 2월2일
▶장소 : 경기도미술관 2층 기획전시실(안산시 단원구 동산로 268 화랑유원지 내)

미술동인 '새벽'은
1988년 결성된 '미술동인 새벽'의 전신은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계기로 결성한 수원문화운동연합(이하 수문연)이다. 수문연은 나눔미술분과와 열림미술분과로 나누어 활동하면서 모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왔다. 이들은 개별적 창작보다는 정치현안에 비중을 둔 문예실천에 비중을 뒀다. 노동미술, 일반인 상대의 미술교육, 전문창작집단 지원과 같은 활동에서 일상적 미술운동이라 할 수 있는 걸개그림, 벽화, 영정제작, 생활미술운동 등이 주된 활동이었다. 당시 보수적인 수원화단 분위기에서 미술계 내부의 정서적 대립으로 인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 속에 문제의식을 제기하기 위해 '새벽'이 결성됐다.

연대기
▶창립년도 : 1988년
▶창립멤버 : 김영기, 이주영, 박경수, 이달훈, 이병렬, 최익선, 최춘일, 주영광, 이오연, 박준모, 박태균, 차진환, 서동수, 류우종, 손문상
▶1989.10. 미술동인 새벽 창립전 '오늘의 땅'(참여작가 : 김영기, 이주영, 박경수, 이달훈, 이병렬, 최익선, 최춘일, 주영광, 이오연, 박준모, 박태균, 차진환, 서동수, 류우종, 손문상)
▶1990.5. 미술동인 새벽 '정치, 정치, 정치 전'(참여작가 : 구본주, 권용택, 김영기, 류우종, 박경수, 박종훈, 박준모, 박태균, 서동수, 손문상, 신경숙, 양혜영, 양순희, 이달훈, 이병렬, 이오연, 이주영, 주영광, 차진환, 최익선, 최춘일, 황호경)
▶1991. 수원미술인협회로 확대 개편

선언서
제도권 미술문화 정책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냉엄한 비판과 올바른 방향의 모색으로 자주적 창조적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문화를 대변해 우리 모두의 참다운 문화로 정착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미술형식과 내용을 가꾸어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 타 문화단체와의 연대 활동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의 균형을 이루며 학습을 통한 자기완성의 끊임없는 모색을 통해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마련하여 미술의 사회적 책임과 작가 개인의 실천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동인이 될 것이다.

 


[시대 고발자_미술동인 '새벽' 권용택]

"사회 변혁 꿈·희망, 나를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었다" 

 

▲ 미술동인 '새벽' 소속이었던 권용택 작가.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미술동인 '새벽' 소속이었던 권용택 작가.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그 시절 사회 변혁에 대한 꿈과 희망, 나를 다 바쳐서라도 이뤄보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지난달 26일 평창송어축제를 앞두고 평창에서 만난 권용택 작가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사회 변혁을 힘주어 외쳤다. 10년째 평창송어축제 홍보위원을 맡고 있는 권 작가는 20년 전 주요 활동지였던 수원에서 평창으로 귀촌하면서 자연환경이나 평화, 남북통일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사회 비판을 하던 기존 권 작가의 작품들과 사뭇 달라진 그의 그림들이 새삼 궁금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 속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지금은 평창 시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산골짜기 작업실에서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따금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 들 때면 예전의 화풍으로 다시 한 번 쏘아붙이곤 하죠. 최근에는 NO재팬에 적극 동참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것을 주제로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권 작가는 미술동인 새벽에 몸담으며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 변혁을 꾀하는 현실 참여적 작가로 활동해 왔다. 미술동인 새벽은 당시 생겨난 미술 소집단 중에서도 정치, 사회적 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미술그룹 중 한 곳이다.

미술동인 '새벽'의 결성은 포인트(시점시점) 그룹을 이끌던 최춘일이 중심이 됐다. 1980년대 모더니즘적 사고가 팽배했던 한국 화단에 반기를 들던 최춘일은 이를 대항하기 위해 미술동인 새벽을 조직했다. 이때 겨눠졌던 총구는 당시 기성세대 작가들에게도 향해졌다. 청년작가회로 활동하던 권 작가에게도 중대한 결심이 필요했다.

"성인그룹이었던 청년작가회에서 활동하며 교사로 재직했었고 최춘일 등을 비롯해 대학생 작가들과는 선후배 관계로 알음알음 지내오던 차였죠. 미술동인 새벽이 결성되면서 후원을 하게 됐고, 뜻이 같았던 후배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간의 모든 직을 내려놓고 새벽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권 작가가 합류하게 되면서 탄력을 얻게 된 미술동인 새벽은 활동에 박차를 더해갔다. 정치, 사회적인 모든 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점차 덩치가 커진 새벽은 이후 대중적인 조직으로의 확대를 위해 수원미술인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박창수 열사를 기리기 위한 걸개그림 제작 등 사회 변혁 운동 참여에는 어디든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됐죠. 그러다 동인의 성격만 가지고는 활동에 한계를 느꼈고, 수원미술인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수원지부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현재까지도 다양한 사회 활동과 작품활동에 나서고 있는 그룹이 '새벽'입니다. 저 역시 민미협 수원지부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수원에 뿌리를 두고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동이 이어져 오고 있는 미술 소집단은 미술동인 '새벽'이 유일하다. 지금도 평창과 수원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 중인 권 작가에게는 사회를 향해 횃불을 들던 그때나 촛불을 들었던 지금이나 염원하는 바람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통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끝>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