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던 그 감동이 이제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민족공조 선언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북에게 있어 2019년은 대화에 임하는 미국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시간이었다. 미국과 오랜 시간 대결과 협상을 벌여 온 북은 미국을 잘 알기에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지난 2019년 4월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한이 지나도록 미국의 셈법이 바뀌지 않자 북은 예고한 대로 새로운 길을 선택했음을 분명히 했다. 2019년 12월28~31일까지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이 조미대화를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쟁전야로 치닫던 2017년의 군사대결전이 2018년에 외교전으로 전격 전환되어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가 2019년의 교착상태를 거쳐 2020년에 다시 대결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이다.

2018년 벽두에 평창올림픽 참가를 선언하면서 평화 분위기를 열어젖힌 것도 북이요, 미국에게 시한을 준 것도 북이며, 미국의 미온적 태도에 실망하여 다시 대결을 선언한 것도 북이다. 향후 정세도 북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신년을 맞이할 때마다 남측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내놓던 북이 올해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남측을 지켜보고 판단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2018년에 백두산에 함께 올라 대결 종식과 민족 공동 번영을 약속한 남측이 미국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을 북은 지켜보았다. 기대할 것이 없음을 판단한 북으로서는 남측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북은 새로운 길을 택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다.

문재인정부도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민이 깊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우리 정부의 선택은 뻔하다. 북과 미 사이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정세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북미 대결이 예전처럼 냉탕과 온탕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다.

북을 연구하고 지켜본 사람이라면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든지 "꿋꿋이 뻗치고 서서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적대세력들에게 계속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공언이 결코 빈말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지할 것이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제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지난 한 해 우리도 미국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길을 과감히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새로운 길이 외세에 의존하는 길일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던 그 감동이 이제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민족공조 선언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